성경 룻기 4장에는 ‘아무개’가 등장한다(룻기 4:1). 즉 이름이 소개되지 않은 어떤 사람이다. 어떤 성경번역본은 이것을 ‘여보시오’정도로 번역했지만, 개역개정성경처럼 ‘아무개’로 부르는 것이 보다 원문에 가깝다. 이름이 성경에 소개되지 않고 그저 ‘아무개’로 부르는 그 사람은 룻의 ‘기업 무를 자’였다. ‘기업무를 자’란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규례로서, 어떤 이유로 원래 할당받은 가문의 땅을 팔거나 잃어 버렸을 때 그것을 대신 되사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친족관계를 일컫는다. 

 
룻기는 가산을 다 팔아버리고 외국으로 떠났다가 남편과 자식들을 다 잃고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해 고향땅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땅을 되사주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친족으로서 나오미를 대신하여 그 가문의 땅을 되사주어야 하는 1순위가 바로 ‘아무개’였고, 그 다음 순위가 보아스였다.
 
아무개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그 땅을 자신이 되사주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룻 4:4). 그러나 이 사람은 보아스의 어떤 말을 듣고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자신은 그 권리와 책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그 이유는 이것이다.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룻기 4:7). 그는 손해나는 장사이기 때문에 자기는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개는 자기의 재산을 들여 나오미의 토지를 사주는 것이 손해라는 것은 몰랐다. 그러다가 나중에 손해가 날 것 같으니까 얼른 말을 뺀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토지와 관련된 규례와 관련이 있다. 본래 토지는 함부로 사고 팔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팔았다 해도 7년마다 한번 씩 돌아오는 안식년이나,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이 되면 그 땅은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히브리인들의 부동산 투기라는 것은 발을 붙일 수 없는 경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자기 땅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후손이 없는 땅을 사는 것이다. 상속받을 자손이 끊어지게 된 땅은 친족 중 누가 대신하여 빚을 갚아주고 그 땅을 되돌려 줄 필요가 없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의 두 아들은 다 죽었다. 기업을 이을 후손이 없는 나오미가 죽게 된다면 그 가계는 영영히 끊어지게 되고, 그러면 그 기업은 합법적으로 기업을 되사준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 기업은 영원히 자기 소유의 땅으로 남게 된다. 
 
 ‘아무개’는 자기 재산을 불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경제적인 이득만을 생각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가 급하게 취소한다. 갑작스런 태도의 돌변은 그 땅의 등기를 자기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돈만 대고, 명의는 죽은 아들의 이름으로 해서 그 가문이 없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룻기 4:5). 
 
아무개는 합법적으로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반색을 해서 사겠다고 나섰지만 실상은 오히려 재산상 속해가 될 것이 확실하자 발을 뺀 것이다. 성경은 이 사람의 이름을 기록할 가치가 전혀 없었다는 듯이 익명으로 처리하였다. 반면 뻔히 재산상 손해임을 알고도 그 책임을 성실하게 그리고 기꺼이 감당한 보아스의 이름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요즘 코로나 19 전염병 때문에 마스크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것으로 떼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씁쓸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마스크뿐 아니라 다양한데서 남의 불행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다. 아픔을 공감하고 같이 하지는 못할망정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나의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파렴치한 행동이다. 그들은 사람들은 물론 더구나 하나님에게 아무 기억할 의미나 가치도 없는 자, 익명으로 처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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