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이번 사태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는 우리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곳은 대부분 폐쇄되고, 심지어 확진자가 나온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의심을 눈초리를 보낼 정도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한마디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이라고 하였다(히 2:15). 어디 이번뿐이겠는가? 우리 인생에는 다양한 질병과 죽음의 위협이 있고, 각종 사건 사고에 노출되어 있다. 오늘 하루 사는 삶이 당연하지 않고 감사한 것이기도 한 이유이다. 

 
두 번째로 이런 자연의 재앙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쾌락 추구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이번 질병은 야생 박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몸과 정력에 좋다는 이유로 야생동물을 산채 취식하거나 피를 먹기도 한다. 자연의 순리와 질서를 무시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오히려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천형이라 불렸던 에이즈의 시작도 원숭이와의 성적 접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70년 이래 최악의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여러 나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과학만능주의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최첨단 시대와는 대조적으로 생존에 대한 큰 두려움을 우리에게 주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이렇게 육체의 건강을 염려하고 돌보는 만큼 우리의 영혼에 대해서도 돌보는가 하는 생각이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선언한다(히 9:27). 이러한 성경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사라지고 그저 건강하고 부유하게 세상을 누리며 사는 것에 몰두하지는 않은지 반성해 본다. 조금 더 길게 살든 아니든 간에 결국 인생은 짧다.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것”을 진정한 복이라 했다(요삼 1:2). 먼저는 영혼이 잘되어야 하고 거기에 모든 하는 일이 달되고 건강하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네 번째로 그러나 우리의 육신의 건강과 안녕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혼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육체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 즉 하루하루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 신자들은 이번 사태들이 빨리 진정되도록 간구해야 할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각자도 개인위생에 힘쓰고,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등 필요한 모든 것에 협력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과잉대응이 안이한 대응보다 낫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 26:20)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그리고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시 57:1).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빨리 진정되고 나라가 안정되기를, 이번 재앙이 빨리 지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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