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중국이 통일되어 부강한 경우에는 외부를 향해 팽창 정책을 실시한다. 반면에 중원이 분열되거나 약해졌을 경우에는 외부의 이민족들이 중원을 공략하는 역사적 반복을 계속해왔다.

 
중국 만리장성 너머의 광대한 초원지대에는 다양한 유목민족들이 살고 있었고 이들에게 있어 농경생활을 하는 중국인들은 풍부한 물자의 공급지로 그 세력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쳐들어 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나라가 멸망하고 위진 시대를 겪으면서 중원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틈을 탄 북쪽의 대표적인 5개 유목민족이 만리장성을 넘어 양자강 이북의 중원을 공략하였는데 그 5개 유목민족을 가리켜 오호(五胡)라고 하였다. 
 
더 많은 민족들이 있었지만 그 중 대표적인 5개의 유목민족은 흉노족, 선비족, 갈족, 강족, 저족이 있었다. 이들은 한나라 중엽부터 조금씩 만리장성을 넘어와 한족들과 어울려 살기 시작했고 군인이 되거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요하지역에는 선비족이 있었고 청해성과 감숙성에는 저족과 강족이 섞여 살고 있었다. 한족 관리들이 이들에게 세금을 받고 차별적 정책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수차례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흉노족은 기원전 4세기에서 5세기까지 북아시아 초원지역에 존재한 유목민의 제국으로 시베리아 남부, 만주 서부, 몽골, 감숙성, 신장 위구르 자치구까지 그 세력을 확장했다. 유럽역사에서 두려움의 존재였던 훈족도 흉노족과 같은 유목민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들은 동쪽으로는 중국을 공략했고 서쪽으로는 로마까지 영향을 미쳤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도 바로 흉노족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였다.
 
또 하나의 유목민족은 선비족이다. 선비족은 흉노족보다는 조금 더 동쪽 지역에 살고 있었고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온 흉노족에 복속되어 있었으나 한나라와 흉노가 전쟁을 하는 동안 자신의 실력을 키워 흉노족과 대립하였다. 이들은 중원으로 들어와 빠르게 한족과 동화되면서 중국에서 지배층이 되었다. 선비족은 북위를 건설하고 이후 북제, 북주, 수나라와 당나라까지 중국의 지배자로 지속되었다. 6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순수한 선비족끼리만 결혼을 하여 혈통을 유지하였고 수나라와 당나라도 이들의 후예라는 학설이 존재한다. 
 
갈족은 중국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존재하지는 못한 유목민족이다. 원래는 흉노의 노예민족이었으나 이후 흉노정권을 무너뜨리고 조(趙)나라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들은 종교가 매우 특이하여 조로아스터교, 즉 배화교를 숭상하였는데 이후 당나라에서도 널리 유행하였고 중국 소설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명교(明敎)와 관련이 있다. 
 
강족(羌族)은 중국의 서북지역에 거주하였다. 이 강(羌)이란 글자는 머리에 양털 모자를 쓴 사람의 모양으로 양(羊)자 밑에 사람 인(人)이 합쳐져 있다. 이들은 사천성과 티벳 자치구 주변에서 지금도 후예들이 살고 있는데 주로 고산지대에서 거주하고 있다. 춘추전국시기에는 이들이 세운 강(羌)이라는 나라도 있었다. 이후 다른 소수민족과는 달리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글과 문화를 가지고 티벳 고원부근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저족은 강족과 근원은 같으나 이들은 티베트 족의 선조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구채구와 송판이란 곳에서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다. 남북조 시기에 이들은 성한(成漢)이란 이름의 나라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렇게 수많은 유목민족들이 중원을 공략하자 농경을 하던 한족들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인구의 반 이상이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서진시기에서 금나라 시기까지 중원이 유목민의 침략을 받을 때 남쪽으로 이주하여 살게되었는데 바로 이들이 객가인(客家人)이다. 이들의 후예들은 주로 중국의 동남연해지역 즉 광동성, 복건성, 강서성, 대만등지에 분포되어 살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 수백년 동안 유목민들의 침략에 노출되어 다시금 통일의 시기를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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