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방송에서 하나님은 신자들보다도 가난한 자에게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다는 어느 해방신학자의 인터뷰를 들었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빈곤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라면 별다른 이의가 없다. 그러나 마치 가난은 선이고, 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반대한다. 이번 기회에 성경이 말하는 부에 대한 관점을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아브람과 조카 롯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아브람(후에 아브라함으로 개명)은 큰 부자였다.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창 13:2). 성경은 부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성경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5:19)고 했다. 모든 부가 재물과 부요가 선하다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모든 부를 악한 것으로 보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부는 여러 가지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아브람은 조카 롯과 함께 먼 곳에서 이주하여 목축업을 크게 하였는데, 좋은 목초지를 서로 차지하려고 목자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창13:6-7). 재물이 많지 않았다면 그런 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재산 때문에 형제들이나, 혹은 친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다투는 일들이 지금도 흔하다. 성경은 말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부유함 자체가 죄는 아닌데 사람들을 교만하고도 탐욕스럽게 함으로써 분쟁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 아브람은 이런 부에 대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8-9). 아브람은 자기 죽은 형의 아들인 조카 롯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연장자로서, 또 아버지 같은 존재로서 당연한 선택의 우선권을 과감히 내려놓는다. 친족 간의 갈등을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해결한다. 
 
갈등을 풀고자 서로 협상하자고 하면서도 협상이 원만히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상대방이 먼저 양보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노사 간에,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슨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사실은 밥그릇 싸움일 뿐일 때가 많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원인은 서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양보하지 않아서이다. 양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당장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아브람은 그럼에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양보할 수 있었을까? 아브라함은 재물을 따라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가는 자였다. 그는 부를 포기하더라도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에게 친히 하나님의 손으로 그를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은 그가 의지할 수 있는 방패와 가장 큰 보상이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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