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룻기에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던 ‘룻’이 어떻게 유대인 사회에 편입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야기는 어느 유대인 가정이 흉년을 피하여 이방인 민족이 있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룻기 1장). 그런데 불행한 일들이 가정에 남편과 두 아들이 연거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남편과 두 아들 뒤에 남겨진 여인 ‘나오미’는 이방여인인 며느리 ‘룻’과 함께 다시 본토 친척이 있는 유대인 사회로 돌아오기로 결심한다. 계속될 것 같은 불경기를 피해 가산을 정리하여 호기롭게 이민을 간 가정이 연이은 불행 끝에 빈털터리로 고향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몰라보게 달라진 그의 초라한 모습을 믿기 어려운 듯이 수근거렸다. 특히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이 즐거움과 기쁨이었기에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더욱 가슴이 아팠다. 지난 날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을 말할 때 떠올렸던 이름이 나오미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 달라졌다. 나오미는 더 이상 자신을 ‘나오미’로 부르지 말고, 차라리 ‘마라’로 불러달라고 한다(룻 1:20). 마라는 ‘맵다’ 혹은 ‘쓰다’를 의미하며 결국 괴로움이나 고통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이름을 ‘기쁨’이 아닌 ‘고통’으로 불러달라는 것이다. 
 
특히 나오미는 하나님을 등지고 화려한 삶을 위해 나갔던 자신을 회개한다. 나오미는 인생의 모든 문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고백한다(룻 1:21). 인생은 자랑할 것이 못된다. 성경은 말한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5-7).
 
나오미는 빈털터리 인생으로, 쓰디 쓴 실패로 넘어진 상황에서 신에게 항복하는 자세로 빈 손들고 나오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그는 마지막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돌아왔다. 그런데 룻기 1장은 나오미가 내뱉는 탄식과 함께 장면은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들판으로 바뀌면서 막을 내린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룻 1:22). 
 
남편 엘리멜렉을 따라 베들레헴을 떠날 때 풍족하게 모압땅으로 갔던 나오미는, 이제 남편과 두 아들마저 잃고 허탈한 심정으로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나오미는 이제 더 이상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 인생이다. 막막한 인생살이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막막한 현실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은 의미심장하다. 앞에 펼쳐진 추수하게 된 밭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참여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상징과도 같다. 
 
2020년 새해를 맞았다. 추운 겨울이다. 아직 봄은 멀다. 하지만 2020년 인생의 봄날을 미리 꿈꾸어 본다. 어제보다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고, 작년보다 새해에는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아직 봄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이제 곧 봄이 온다. 각자에게 봄날과 같은 인생이 펼쳐지는 새해가 되기를, 그리고 우리나라에 훈풍이 불어오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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