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주인공들, 조조, 유비, 손권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손권은 당시 가장 남쪽 지역에 자리잡은 오(吳)나라에 세력을 두고 있었다. 오나라는 중국의 양자강 남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손권은 위, 촉, 오의 세명의 인물들 중 가장 오랫동안 살았는데 삼국지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이 그의 생애에서 이루어졌다. 우리가 잘 아는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물리쳤고, 관우의 복수를 하겠다고 공격을 시도한 유비를 이릉대전에서 격파하였다. 비록 삼국지 소설에서는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지만 손권을 주인공으로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는 182년에 태어나 252년까지 살아 71살에 죽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90세까지 장수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위나라와 촉한이 황제를 칭하자 자신도 229년에 지금의 호북성 무한에서 황제가 되어 약 23년간 중국의 남쪽을 지배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중국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항주였고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22대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의 아버지 손견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은 손책이고 둘째가 손권이었다.  호남성 장사의 태수였던 손견은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는데 참여했고, 후에는 동탁을 토벌하는 데 참전했다. 이후 원술의 명을 받아 형주의 유표를 공격하다 전사하였는데 이때 손권의 나이는 9살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형 손책도 자객의 손에 죽게되고 자신의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었는데 겨우 19살이었다. 아버지가 죽고 10년이 지나 형도 죽으면서 손권이 권력을 물려받았다. 이 기회를 틈탄 지방 세력들과 친척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장소와 주유, 정보와 같은 부하들의 도움을 받아 모두 진압하고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였다. 
 
내부를 안정시킬 즈음에 천하를 통일하려는 북쪽의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남쪽을 공격해왔다. 조조는 먼저 유비를 격파하고 파죽지세로 손권이 지배하는 오나라를 향해 진격했다. 조조는 손권에게 항복을 하라는 서신을 보냈고 이에 오나라 내부에서는 주전파와 화친파가 둘로 나뉘어 서로의 주장을 펼쳤다. 
 
주전파는 노숙과 주유가 중심이 되었고 손권도 조조와의 일전을 결심하게 된다. 노숙은 당시 유비의 책사였던 제갈량을 데리고 왔는데 이를 통해 유비와 협력하여 조조와의 전쟁을 결정하였다. 약 5만명의 군대로 적벽에서 대치하였고 화공법을 사용하여 조조의 군대를 대파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이 바람을 일으키고 10만 화살을 얻는 장면이 나오는 등 마치 제갈량이 이긴 것처럼 묘사하였으나 실제 적벽대전에서의 핵심인물은 주유였다. 
 
한동안 손권과 유비간에는 연맹을 굳건히 하였으나 유비가 형주땅을 돌려주지 않자 여몽을 보내 관우를 격파하고 살해하였다. 그 이듬해에 조조가 병으로 죽었고 아들인 조비가 220년에 위나라의 황제에 등극했다. 그 다음해에는 유비가 황제에 등극하고 촉한이라고 칭했다. 
 
황제가 된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제갈량과 조자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나라를 공격하였고 결국 이릉대전에서 패해 백제성에서 생을 마감한다. 유비가 황제에 오른 후 겨우 2년째였다. 조조와 유비가 모두 죽은 후 229년에 손권도 황제에 올랐으며 국호를 오나라로 칭했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 지금의 월남 북쪽땅을 평정하여 오나라의 영토로 삼았고 평생을 전쟁과 벗하여 살다가 252년에 병사하였다. 
 
손권이 약 50년간 오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통합’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보다는 주위의 참모들의 말을 경청하고 이를 존중할 줄 알았다. 그래서 손권의 주위에서 손권을 떠난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위나라와 촉나라에 대해서 유연한 정책을 시도할 줄 알았다. 그의 50년간의 통치는 유연한 자세와 경청, 그리고 사람들을 통합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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