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준비를 하다 오래전 기독교 잡지「낮은울타리」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났다. ‘내게는 이 김밥이 빽이다’라는 제목으로 경기도 일산의 이일경씨의 글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신 후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그와 어머니는 빚쟁이에게 시달려야 했고, 어머니가 김밥 행상을 하면서 힘든 생계를 꾸려갔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공부는 뒷전이고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러다 시비 끝에 주먹을 휘둘렀고 폭행 가해자가 되어 경찰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어머니가 경찰서에 달려와 자식을 대신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고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결국, 그는 훈방 조처되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형사들에게 연신 굽신거리면서 극구 사양을 하는데도 팔던 김밥 광주리를 펼치고 근무하는 형사들에게 김밥을 나누어 주었다. 그의 눈에 어머니의 그런 행동들은 너무 창피하고 비굴하게만 보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사건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경찰서에 김밥을 갖다 주었다. 그것도 파는 김밥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서.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아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어머니에게 따져 물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이것이다. “아비도 없이 형편없는 환경에서 네가 이 꼴로 사는데, 내 속인들 편하겠니. 젊은 놈이 사고 칠 수 있지. 그런데 이런 일이 어찌 한 번뿐이겠냐.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겠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이 있어도 너를 꺼내 줄 ‘빽’도, 돈도 없다. 그러니 평소에 이렇게 김밥이라도 정성껏 싸서 갖다 주면 혹시 그런 일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단다. 그날 경찰서에서 내놓은 김밥이 참 맛있다고 형사들이 말했을 때 말이다. 내게는 이 김밥이 ‘빽’이다. 널 지켜 줄 수 있는 나한테는 젤 소중한 ‘빽’이란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정성 들여 만들지 않을 수 있겠니….”
 
필자에게도 그런 어머니가 계시다. 필자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집안 형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남동생이 ‘진주종성 중이염’이라는 질병이 심해져 수술을 거듭해야 했고, 청력에 문제가 생겨 결국 보청기를 껴야 했다. 30년도 더 오랜 그때 수술비용과 보청기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모든 처치를 마치고 의료비 수납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는 진료실에서 필자와 동생을 나가 있으라고 했다. 필자는 어머니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를 알고 있었다. 이전 다른 병원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의료비를 깎으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그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나가 있으라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진료실 밖에서도 안에서 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울면서 제발 사정 좀 봐달라고, 비용을 깎아 달라고 의사에게 간청하였다. 그걸 어떻게 깎아주느냐고 하는데도 어머니의 간청은 그치지 않았다. 그때 집안 사정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사정도 모르고 필자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너무 무리한 요구이고 비굴해 보였다. 왜 이미 책정된 가격을 저렇게 억척스럽게 깎으려고 하는지 화가 났다. 무엇을 사든지 늘 깎으려고 하는 어머니가 싫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 자녀들이 번듯한 사회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을 위해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셨던 어머니 덕분임을 알게 되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어머니는 그때 겨우 삼십 대 후반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셨을까?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이 자식을 살게 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없었던 어머니. 지금은 많이 늙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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