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가 서한에서 동한으로 옮긴 후 점차 국력이 기울고 있었다. 황제는 무능하고 환관이 권력을 휘두르고 조정은 부패하여 백성들의 삶은 고단하였다. 이러한 고통은 농민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반란이 황건적(黃巾賊)의 난이었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는 옛 이야기처럼 삼국지는 동한 말엽에서 삼국을 통일한 진(晋)나라 초기까지 약 100년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다. 

 
원래의 삼국지는 진수란 사람이 쓴 ‘삼국지’가 정사(正史)로 알려져 있다. 이후 삼국지는 민간에게 널리 퍼져 이야기가 각색되고 무대극으로도 올려져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에 나관중은 진수의 삼국지와 민간의 전설과 이야기들을 엮어 삼국지를 소설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널리 읽혀지는 삼국지이다.  
 
삼국지에서 보면 위, 촉, 오 삼국 중에서 위나라가 훨씬 더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유비(劉備)를 조조나 손권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삼국시대를 말하기전에 우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가 이야기 하려는 밑그림을 살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 
 
먼저 삼국지는 많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중국전통문화의 뿌리를 표현하고 있다. 공자와 유교의 핵심 사상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통해 독자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소설 속의 대표적인 인물인 유비는 ‘인(仁)’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사람들을 덕으로 다스리는 인물의 형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도원의 결의에서 의형제를 맺은 관우(關羽)는 ‘의(義)’를 상징한다. 조조가 약속한 부귀 영화를 마다하고 자신의 약속을 죽음보다 소중히 여기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삼국지에서의 의리의 화신으로 여겨진 관우는 그래서 지금도 중국인과 중국 상인들로부터 관우를 재물의 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잠을 잘때도 눈을 뜨고 자며, 단순하지만 용맹스럽게 묘사된 장비(張飛)는 ‘용기(勇氣)’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다혈질적이고 무모할 정도의 직설적 성격을 표현하여 장비를 용감한 장수로 그리고 있다. 
 
또 하나의 인물은 조자룡(趙子龍)이다. 한국의 속담에도 ‘조자룡이 헌칼 쓴다’라는 말이 있듯이 삼국지에서 재미를 더해주는 인물이다. 위기에 빠진 유비의 아들을 구해왔을 때 유비가 아들 유두를 내팽개치는데, 그 후유증으로 유두가 성장하여 왕이 되었을 때 우둔해졌다라는 말도 있다. 조자룡은 죽음을 무릅쓰고 유비의 아들을 구해내면서 ‘충(忠)’의 상징이 되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는 부분은 제갈공명이 등장해서 죽을때까지 부분이다. 제갈량은 ‘지(智)’, 즉 지혜를 상징한다. 그의 신출기묘한 책략과 능력이 독자들을 삼국지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나관중은 이렇게 인물을 통해 당시 중국의 전통사상에 부합하면 선(善)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惡)으로 이분화 하였다. 동시에 ‘세상의 통일이 오래되면 분열되고, 분열이 오래되면 통일이 된다(天下大勢, 合久必分 分久必合)’라는 역사의 반복성을 강조하고 있다. 나관중은 역사의 반복성을 통해 역사 순환론과 숙명론적인 접근법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실제 중국의 역사는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삼국지의 주인공이었던 조조(曹操)는 한나라를 무너뜨리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조조를 간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관중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유비와 촉나라였으나 실제 역사 속의 주인공은 조조였다. 그리고 단순히 동탁이나 원소같은 수준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조를 간신이 아닌 간웅(奸雄)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은 조조에 대한 평가를 단순히 유교적 관점이 아니라 지도력과 지도자의 결단력, 판단능력 등을 종합해 볼 때 그가 유비나 다른 인물들보다는 훨씬 뛰어났다는 새로운 조명으로 조조를 재호출하고 있다. 
 
 만약 시간이 있다면 다시금 삼국지를 꺼내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당시 100년의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인물들간의 이야기 속에 중국 역사가 압축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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