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라는 뛰어난 화가가 있었다. 그는 일본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일본 에도시대 ‘우키요에’(풍속화) 화가이다. 평생 3만 장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으며, 서양의 유명한 화가인 고흐 등 인상파에도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흔세 번이나 이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만 몰두하다 방이 어지러워지면 이사를 하곤 했다. 마지막 아흔세 번째로는 예전 살던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방이 이사갈 때와 별 차이가 없는 것을 보고는 그 이후로 이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네덜란드 자유대학의 미술사 교수였던 한스 로크마커(Hans Rookmaaker)는 『예술은 변명하지 않는다』(Art Needs No Justification)는 책에서 이 호쿠사이에 대한 감동적인 일화를 소개하였다. 어느 날 호쿠사이의 친한 친구가 그를 찾아와 수탉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수탉을 그려본 적이 없는 호쿠사이는 친구에게 2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2주일 후에 친구가 찾아왔을 때 그는 다시 약속을 두 달을 연기했고, 다시 반년을 연기했다. 결국,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림을 부탁했던 친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며 호쿠사이에게 화를 냈다. 그 모습을 본 호쿠사이는 말없이 종이와 물감을 가지고 오더니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수탉을 그려주었다. 완성된 그림이 얼마나 생동감이 있던지 마치 살아있는 수탉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림을 본 친구는 기뻐하기보다 분노했다. 이렇게 쉽게 그려줄 수 있으면서 왜 3년씩이나 기다리게 했느냐며 그에게 따졌다. 그러자 호쿠사이는 친구를 자신의 화실로 데려갔다. 커다란 화실 사방에는 3년 동안 밤낮으로 연습한 수탉의 그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타고난 재능도 거듭된 훈련으로 단련된다. 노력과 훈련은 배신하지 않는다. 훈련과 연습처럼 훌륭한 선생님도 없다. 아무리 좋은 재능과 자질이 있어도 그것을 잘 훈련하고 연습하는 데 게을리한다면 진가를 발휘하기 어렵다. 반면 그다지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꾸준한 노력과 훈련을 거듭한 사람이 빛을 발휘한다. 솔로몬의 잠언에 이런 글이 있다.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24:30-34). 
 
밭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조금만 방심하면 어느 순간에 잡초가 밭에 무성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농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농사가, 그리고 예술작품에 변명이 필요하지 않듯이,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도 모두 많은 인내와 연단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성경에는 ‘연단’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 17:3). 금과 은이 제련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제품으로 탄생하듯, 우리의 인격과 마음도 연단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가면 그에 맞는 인격의 성숙함을 기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확인한다. 그래서 마음도 단련이 필요하다. 어제 살던 방식 그대로 오늘도 내일도 아무런 반성 없이 사는 관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예술에 변명이 통하지 않듯 내 인생도 구차한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 부끄럽지 않은 부지런함과 훈련이 계속되어야겠다. 오늘도 어느 노래 가사 말처럼 단지 나이 들어감이 아닌 영글어가는 시간이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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