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세운지 400년이 지나자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중국의 동서남북을 호령하고 지금 중국의 92%가 한족(漢族)일 만큼 부강했던 이 제국은 내부의 모순에 의해 모래성처럼 무너져 갔다.

 
대장군이었던 하진이 환관들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피살되었고, 그 수하에 있던 원소가 궁궐을 포위하여 약 2천명의 환관을 제거하였다. 이 혼란한 틈에 당시 한나라 황제가 피신한 것을 발견한 동탁이 황제를 내세워 자신이 권력을 장악했다. 동탁의 폭정에 항거하는 반란이 각지에서 일어났고 동탁은 당시의 수도인 낙양을 불지르고 장안으로 피신하여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이러한 혼란과 난세의 와중에 새로운 영웅호걸들이 등장하였다. 바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조, 유비, 손권과 그를 따르던 많은 인물들이 별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삼국지 초반에 나오는 인물중 동탁을 먼저 보아야 한다. 부패와 살인, 독재 등 갖은 폭정과 악인의 상징으로 불리우는 이 인물에서 삼국지는 시작한다. 동탁은 원래 서쪽 변방을 지키던 관리였으나 뛰어난 처세술로 당시의 수도인 낙양에 입성하게 된다. 동탁이 입성했을 때 이미 도성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이때 북망산에서 황제 일행을 만나게 되고 이들을 호위하여 수도로 돌아왔다. 
 
교활한 동탁은 사실 자신의 병사가 3천명에 불과하였으나 매일 성밖을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하여 마치 대군을 거느린 것처럼 하면서 다른 군대들을 자신의 군대로 편입시켜 진짜 대군을 거느릴 수 있었다. 기고만장한 동탁은 황제를 만날때도 자신의 칼을 찼고 그 군대는 살인과 약탈을 일삼아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동탁을 토벌하기 위한 군대를 일으켰다. 동탁은 낙양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수도 낙양의 수백만명을 강제로 장안으로 이주시켰다. 이때 궁궐과 관청을 모두 불태워 버렸고 굶어 죽은 시체가 거리를 메울 정도였다. 
 
동탁을 토벌하기 위한 연합군은 서로의 이해에 눈이 멀어 실패하였고 동탁은 당시 가장 뛰어난 장군이었던 여포를 자신의 양자로 삼아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제거하였다. 장안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에도 동탁의 폭정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잡은 후 자신도 황제와 같은 수레와 복식을 입었고 일가 친척들에게 관직을 하사하는 등 그의 악행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 왕윤이라는 관리가 있었는데 그는 겉으로 동탁에게 충성을 하는 척 했지만 동탁을 제거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자신의 하녀 중에 초선이라는 미인이 있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수양딸로 나오지만 역사서에는 하녀로 나온다. 초선은 중국의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왕윤은 이 초선을 이용하여 동탁과 양아들 여포에게 연환계를 사용한다. 
 
왕윤은 초선을 동탁에게 바치는 한편, 여포에게는 원래 당신에게 바치려고 했는데 동탁이 이를 가로챘다고 고자질하였다. 여포와 초선의 밀회 장면을 목격한 동탁이 화가나 여포에게 창을 던졌다. 왕윤은 다시 여포를 불러 동탁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고 결국 여포는 동탁을 창으로 찔러 죽였다. 이때 여포는 내가 황제의 조서를 받아 역적 동탁을 친다라고 외치면서 동탁을 죽였는데, 동탁은 개같은 놈이라고 여포를 욕하면서 죽었다. 동탁이 죽고난 후 왕윤 또한 동탁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하고 여포는 동탁의 머리를 들고 원술에게로 달아났다. 
 
여포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말에는 적토마가 사람 중에는 여포가 있다(馬中赤兎, 人中呂布)”라는 말로 그의 무예에 대해 감탄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잦은 배신과 욕심은 그를 결국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만다. 
 
한나라 말기의 혼란과 난세는 이제 새로운 영웅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나관중의 삼국지는 이 영웅들을 하나씩 새롭게 각색하여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사랑받는 소설로 남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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