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갈기로 계획했던 어느 농부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농부는 밭을 갈러 간다고 자기 아내에게 말하고 집을 나섰다. 그는 트랙터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러야 했다. 주유소로 가려다 문득 그는 돼지들에게 사료를 주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창고로 갔다. 거기서 사료를 넣어둔 자루를 보자, 창고 뒤쪽에 놔두었던 감자들이 싹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는 감자들을 자루에 넣어 건조한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감자를 넣어둘 자루를 찾으려고 장작더미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자기 아내가 장작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가 몇 개의 장작을 모으고 있을 때, 병든 닭 한 마리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장작더미를 땅에 내려다 놓고 그 닭에게 다가갔다……. 이미 황혼녘이 되었지만, 이 낙심한 농부는 벌판에 홀로 세워둔 트랙터에 되돌아가지 못했다.

 
농부가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은 무엇인가? 그런데 그가 하루 동안 한 일은 무엇인가? 만일 이 농부가 하루가 아닌 인생 전체를 이런 식으로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이 농부는 절대 게으르지 않았다. ‘게으름’은 일반적으로 ‘행동이나 일 처리가 느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버릇이나 성미’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농부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온종일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당장 눈앞에 바쁜 일들을 처리하려고 하다가 원래 계획했던 일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천성이 느리거나 해야 할 일들을 귀찮게 생각하고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하루하루 늘 조바심치고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목적과 계획도 없이 무조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게으름이다. 우리는 일을 느리게 하고 나태한 것은 쉽게 죄악시하면서도, 분주한 삶을 살지만 실제로는 게으른 것에 대해서는 문제로 자각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성경은 시간에 대해 이렇게 교훈한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아끼라고 말한다. 지혜롭게 인생을 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보라고 한다. 자기 삶의 패턴을 주의 깊게 관찰해보고 곰곰이 성찰해 보라는 것이다. 늘 급하고 바쁜 일로 뛰어다니다가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이 필요하다. 나에게 중요한 가치와 우선순위는 무엇인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껏 쉬지도 못하고 바쁘게 살아왔던 날들을 뒤늦게 후회할 날이 올지 모른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목표도 없이 달리거나, 허공에다 주먹을 휘둘러 대는 사람처럼” 살지 않았다고 회고한다(고전 9:26).
 
어느새 올 한해도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연말이 가까운 지금, 우리 각자의 2019년의 삶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나? 과연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갈 인생인가? 속도가 중요하지만, 방향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잘못된 방향인 줄도 모르고 바쁘게만 간다면 돌아올 길만 더 멀어진다. 
 
연말이 가까울수록 마음은 더 조바심이 나고, 또 이런저런 모임들로 바빠진다. 아직 남은 한 달,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하면서 올 한 해를 차근차근 정리해 보고, 다가올 2020년을 계획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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