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하루 사이에도 다양한 사고나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 필자는 청년 시절 큰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고속으로 달리던 우리 승용차가 우리 차를 못 보고 갑자기 저속으로 끼어든 트럭과 추돌하였다. ‘꽝!’하고 차끼리 부딪치는 굉음이 있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트럭 밑으로 차가 들어가 있었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필자의 머리 바로 위로 트럭 짐칸 모서리가 있었다. 운전자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차를 중앙 분리대 쪽으로 꺾은 모양이었다. 만일 그 짧은 순간 옆으로 엎드리지 않았다면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라는 다윗의 고백이 실감 났다(삼상 20:3). 죽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작가 박완서의 글 중에 ‘일상의 기적’이 있다. 그는 갑작스러운 몸의 통증으로 고생했던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건강할 때는 건강의 고마움을 잘 모른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덜컥 몸에 이상이 온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동안 내가 누리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그런데 박완서의 지적처럼 내가 지금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을 기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걸어야 기적이라 생각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장기하가 부른 노래의 가사에 있듯, 별일 없이 그리고 별다른 걱정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안다면 행복할 수 있다. 가진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가지지 않은 것 때문에 불행하다. 그러고 보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더 가지지 못한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다. 
 
어제 잠들면서 필자는 자는 동안에도 심장이 계속 뛰어줄까를 가지고 고민하지 않았다. 기계도 오래 쓰면 쉽게 망가지는데 50여 년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해 온 심장은 내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여전히 뛰고 있다. 어제까지 뛴 심장이니 오늘도 내일도 당연히 뛴다는 보장은 없다. 고맙다 심장아! 땅을 걱정 없이 내디딜 수 있는 다리,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는 손,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눈과 고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그리고 숨을 쉬고 냄새 맡는 코와 말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입까지 어느 것 하나 고맙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모든 일상 가운데 스며있는 창조주의 신비한 섭리를 발견하곤 한다.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고 감사할 일이다. 더구나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영원히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 어느 것 하나 당연하지 않고 감사한 일임을 안다면 그만큼 지금 사는 인생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할 일이다. 새삼 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지를 생각하는 오늘이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 5:18,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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