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은 눈과 빛을 공유하고 있었다. 의사에게 내 눈의 불편을 호소하는 짧은 만남을 위해 기다린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직업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아랑곳없이 오직 내 눈에 집중해 모인 사람들이 가득 붐볐다. 

 
젊은이가 보이지 않아 노인복지관에 들어선 착각이 든다. 어떤 이는 다리까지 절룩이며 들어오는데 인생살이에 치열했던 닳은 몸들을 마주치며 구체적으로 노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날 아침 반닫이 서랍장 위에 놓인 엄마 얼굴 사진이 찌그러져 보여 내 눈을 의심하였다. 글씨를 읽기 위해 양미간 눈살을 오만상을 가지고 찌푸리니 여러 가지로 피로하다. 
 
사전을  검색하면 눈은  “빛을 수용하여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특수화 된 감각기관“이라고 정의되어있다. 세상의 빛과 색에 반응하느라 지쳐 나자빠진 눈을 쉬게 하려 요즘은 멍 때리기 시간과 함께 자주 눈을 감는다. 
 
생땍쥐베리가 어린왕자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라고 속삭였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오랫동안 내게 호기심이었다. 상징과 비유에서 드러나는 숨은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젊은 날에, 내 의견을 융통성 없이 고집 했을 때 말없는 어머니는 한마디 말씀으로 나를 꺾으셨다. “너도 늙어보아라!” 나의 늙음은 서서히 곧바로 현실로 나타나 닥쳐온 가을을 맞는 나뭇잎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내 얼굴이 네 얼굴, 네가 나, 왠지 개성의 구분이 희미하다.
 
남에게 하는 말이 곧 자기에게 하는 말로 복선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백내장이 일찍 찾아왔네요!” 의사의 진단으로 내 몸에 찾아온 병을 돌보게 되었는데, 안경을 사서 쓰니 선명히 보이는 글자와 안경사의 얼굴에 놀라웠다. 
 
백내장 진단으로 새로운 눈동자를 얻게 되었으니 하루하루 분명한 어떤 무늬가 수놓아질까? 분명하다는 것에 약간의 불안이 뒤따른다.
 
거리에 오고가는 사람들의 눈동자들이 다시 보인다.  머리 위에는 카메라의 수많은 눈동자들! 저 빛보다 더 깊은 초록 눈으로 오랫동안 당신을 보아야겠다. 
 
결명자 차를 끓여 마신다. 지금은 가을비와 함께 틈틈이 쉬기도 하며 곱게곱게 단풍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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