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빌립보서는 바울 사도가 유럽에 세워진 첫 교회인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바울은 빌립보지방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빌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이 기도는 먼저 우리의 사랑은 완성품이 아니라 점점 더 자라가고 풍성해지는 무엇임을 가르쳐준다. 땅에 심겨진 씨앗이 점점 자라서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듯이 사랑도 자란다. 작은 바퀴는 도로에 생긴 작은 구멍에도 멈춰 서지만, 바퀴가 클수록 넉넉히 넘어선다. 사랑이 더 풍성해지고 자라면 배려와 포용력의 범위가 더 넓어지게 된다. 
 
특별히 바울은 이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풍성해져 가기를 기도했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총명은 그 아는 것을 실천하는 통찰력과 지혜다. 사랑은 지식으로 풍성해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피상적이며 깊이 있는 사랑으로 나가기 어렵다. 아무리 오래 알아온 사이라도 반복되는 형식적 만남이고 서로 인격적인 교류와 앎의 경험이 없이 데면데면하면 사랑이 자라지 않는다. 더 풍성하게 사랑하려면 상대방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총명으로 풍성해져야 한다. 나는 기껏 사랑의 마음으로 했는데 상대방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심지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부모의 과도한 사랑과 집착, 자기중심의 사랑은 오히려 자식을 망친다. 사랑은 지식과 함께 분별력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이 총명으로 풍성해지는 사랑이다. 
 
지난주에 평택북부지역(송탄) 기독교 교역자회에서 야유회를 다녀왔다. 매운탕을 먹는 중에 옆에 앉은 목사님이 한 번쯤은 어디서 들었을 법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어떤 어머니가 생선찌개를 요리하면 살코기는 다 자식들 주고 어머니는 정작 생선 대가리만 드시곤 하셨다. 후에 자식들이 장성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하면서 생선찌개의 대가리만 모아서 어머니에게 드리니까 역정을 내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좋아서 생선 대가리만 드신 게 아니라 자식을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어머니가 생선 대가리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랑은 이해와 분별력과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민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센스가 필요하다. 
 
이렇게 지식과 통찰력으로 풍성해진 사랑은 삶의 우선순위를 올바로 결정하게 한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빌 1:10).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한다는 말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게 한다는 말이다. 지식과 통찰력을 겸비한 사랑의 시각으로 매사를 바라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 좋은 것과 최선의 것,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과 시급한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바쁘게 시급한 일을 해결하며 살다가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경우가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부모님에게,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그리고 지인과의 관계 속에서 뒤늦은 후회로 남지 않고 지금 더 많이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앞의 빌립보서 말씀에 전제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죽음에 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체험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점점 더 메마르고 삭막해져가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도, 더 인격적으로 깊이 알아가고 분별력을 가진 풍성한 사랑을 서로 나누며 사는 행복한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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