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이게 여기 있지!!!???” 작년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지갑이 황당하게도 옷걸이 밑바닥 구석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갑 안에는 현금 이십여 만원과 함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에다 신용카드, 은행 보안카드, 가족사진, 그리고 모교 대학원 생활관 식권까지 그대로 다 있었다. 

 
작년 늦은 밤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놓은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집으로 출발할 때 있었던 것 같은 데 없었다. 가끔 지갑을 깜빡 두고 다니는 때도 있었기에 내가 착각을 한 것인가 하고 다음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버스에서 떨어트린 것은 아닐까? 의자에 비스듬히 앉다 보면 뒷주머니의 지갑이 빠지는 일도 있어서다. 해당 버스 회사에 전화로 분실물 문의를 했다. 들어온 것이 없다고 했다. 혹시 함께 탔던 승객 중에 누가 주워 간 것은 아닐까? 별생각을 다 했다. 인터넷으로 경찰청 유실물센터에도 분실 사실을 올려놓았다. 지갑을 분실하면 각종 신고와 재발급 절차 등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님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며칠 안에 찾을지도 몰라 신분증과 카드 분실신고를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그리고 몇 주가 더 흘러도 그 어디에서도 지갑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결국,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그리고 신용카드와 은행 관련 카드도 일일이 분실신고를 해서 재발급을 받아야 했다. 지갑에 평소보다 현금을 많이 넣어놨었고, 또 연구 작업을 위해 사 놓은 도서관 복사카드부터 식권까지 모두 잃어버렸으니 입맛이 썼다. 혹시 버스 기사가 주워놓고도 지갑이 돈이 있으니 신고하지 않고 가져간 것은 아닐까? 그 노선버스가 지나갈 때 괜히 째려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그 지갑을 발견한 것이다. 지갑에 있는 돈을 보고 이게 무슨 횡재 아닌 횡재인가 하는 반가움과 함께, 이제는 아무 쓸모없게 되어버린 신분증과 각종 신용카드와 은행카드를 보면서 뭐라고 말하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유용했던 것들이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되어 버렸다. 내가 가진 새 지갑에는 이미 재발급받은 새 신분증, 그리고 각종 카드가 그 안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 신분증과 각종 카드는 일일이 가위로 잘라서 버렸다. 지레짐작으로 범인으로 의심했던 버스 기사와 또 누군지도 모르는 승객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내 짐작 속에 소환되었었는데,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기억의 한편에 켜켜이 쌓여있는 여러 순간들. 생각의 편린들이 얼마나 많을까? 다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때로 아득한 그리움으로, 아니면 새삼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그리워한들 뭐하겠으며 후회한들 뭐할까. 지금 내게 있는 새 지갑처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소중할 따름이다. 지금 살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도 훗날 어느 땐가 문득 생각날 때가 있겠지. 그때 오늘의 발자국이 이미 필요가 없어 폐기처분해버릴 카드처럼 버려질까? 아니면 다시 찾는 현금처럼 반가움으로 남게 될까?
 
오늘을 체념하고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 오늘이 미래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도록 사는 게 중요하다. 성경에 탕자의 비유가 있다(누가복음 15장). 아버지는 집 떠난 탕자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마음에 그리며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형은 과거를 문제삼아 이미 글러먹은 인간이라고 동생을 비난하기 바빴다. 과거가 그렇다고 미래까지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다. 얼마든지 전화위복, 심기일전이 가능하다.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다. 잃었다 다시 찾은 현금같이 내 인생의 숨겨진 저력으로 힘 있게 일어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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