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김 조각 같은 허술했던 시간들이 비바람 풍상을 가슴에 안고, 뜨고 지는 해를 반복하여 수많은 밤들이 지나고 겹겹이 쌓이면 세월이 된다.그리고 또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유형, 무형의 기억을 흔적이라 불러보고 싶다.

 
자의든, 타의든, 남겨지든, 지워지든 흔적이란 본분의 유전자는 영원불변이라 생각한다. 문득 오롯한 허물을 벗어 나뭇가지에 남겨두고 사라진 매미의 행방이 묘연하지만 궁금하지 않은 이유도 있음을 왠지 알 것 같다.
 
우연히 숲 속 길을 걷다가 온전한 모양의 매미 허물이 미이라처럼 매달려있는 갈참 나뭇가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여름을 호령했을 목청과 긴 호흡들! 가볍게 비상하던 얇은 날개! 온몸을 지탱하여 세상에 매달렸던 가느다란 갈고리 발톱! 보고 듣던 눈과 귀! 
몸통 주름까지 고스란히 형상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을 고민 하며 서성이는 미물 같은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다.
 
흔적의 행방은 주인이 결정할 권리가 없다. 남기고 싶든 그렇지 아니하든 흔적은 존재 할 것이지만 그 형상의 기억과 유형의 잔재는 분명 주인이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의 흔적은 참으로 난해하다. 생각대로 남기고 싶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늘 상 구분하려 한다.
 
그러나 뜻대로 결정되어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남기고 싶은 흔적의 원천을 따라 생활하고 살아가다보면 모르는 사이 구슬간은 흔적들이 싸여 뒤를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감추고 싶은 흔적들을 구태여 가려내지 않더라도 세월이라는 거대한 심판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선별이 된다.
 
과일들의 크기에 따라 선별하여 상자에 담아주는 과일 선별기와는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도 알 터 이지만 감추려 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기억 된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 영특함을 사람들은 지니고 있다.
 
세상의 거칠고 드센 바람이 난무하는 시절이지만 숲속 매미와 거리의 사람들은 같은 해 같은 바람을 보고 맞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허물을 벗어 놓고 다음 자리로 변태할 수 있다면 매미의 흔적을 닮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오롯함과, 가식 없는 형상과 기억, 희망과 기쁨이 메아리치던 함성과 환호, 절망과 슬픔을 견뎌내던 용기와 인내, 쓰다듬어 내려가던 아이를 향한 무한했던 애정들 짜릿했던 승리의 순간과 감출 수 없었던 기쁨의 열기와 열정들 모두가 흔적의 재료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 이대로의 소소한 행복과 웃음이 묻어나는 가느다란 미소 같은 흔적을 만들어 숨기지 않고 세월에게 맞기면 바로 흔적 남기기의 착실한 과정이 아닐까 바람에게 살짝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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