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홍 꽃밭 한 가운데서 유모차에 누워 잠자는 아기는 한나절 엄마와 소풍 나왔나보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가을 정원이다. 

 
일터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을 일하다가 오늘 하루 쉬는 날이다. 가을 햇볕과 서늘한 바람이 들어차 거리는 명랑하다.
 
“지상에는 꽃, 하늘엔 별” 이라는 시 구절이 저절로 떠올라, 지금은 어디를 가도 꽃밭이다. 
 
역 앞 광장에, 교차로 모퉁이에 그리고 은행나무 아래 손바닥 만 한 터에 백일홍과 과꽃이 피었다. 칸나 맨드라미 배롱나무꽃이 피어 저녁 어두움이 환하다.
 
나의 첫 번째 애창곡 <대지의 항구>는 리듬이 경쾌하고 가사는 더욱 매력 있다.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꽃 잡고 길을 물어
물에 비치는 물에 비치는
항구 찾아 가거라.
- 노랫말  <대지의 항구> 부분
 
우리의 선조는 물에 비치는 항구를 찾아 가는 길을 꽃을 잡고 물어 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일제 치하와 육이오 전쟁을 겪고 나오면서도 너의 고운 빛깔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어릴 적엔 나의 꽃밭이 있었다. 저녁 어스름에 맡았던 마당 한 켠에서 나오는 진한 분꽃 향이 마음에 살아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고 간다. 봄에 흙을 파서 분꽃 씨를 두세 알씩 넣어 흙을 덮는다. 
 
열흘이 지나니 싹이 돋아, 한잎 두잎이 나올 때마다 신기해서 잎이 나는 순서와 모양을 일기장에 진지하게 그려 넣었다. 모종을 떠서 옮겨 심어 꽃이 활짝 필 때를 지켜보았다.
 
가을에 꽃씨를 받았다가 봄에 씨를 뿌려 매일매일 꽃밭을 가꾸었을 그 사람의 수고를 생각한다. 
 
아마 늦가을이 되면 꽃씨를 받아 나누어 줄 것이다. 나팔꽃 씨를 받아달라는 친구를 생각하며 꽃씨를 받을 종이봉투를 준비한다. 시국이 어수선해 혼탁한 뉴스에 시달린다. 시끄러워 당장 깨어나야 한다. 길을 걷다 채송화들 앞에 쭈구리고 앉아 묻는다. 
 
“사람들은 요즘 왜 그래?”  
두평 남짓한 채송화 꽃밭에서, 땅에 달라붙어 귀엽게 생기를 내뿜는 작은 빛들의 잔치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 앞에 멈춰서 자꾸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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