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이 맘껏 좋아 이불 홑청을 뜯어 빨아 널었다. 주홍색 바탕에 목단 꽃무늬가 있는 이 작은 이불은 사십 년이 다 되었다. 엄마가 병석에 계실 때 내게 유산처럼 물려주신 이불이다.

 
요즘 시대에는 드문 일이지만, 목화솜을 틀어 이불을 깁던 시절이 있었다. 아래는 하얀 홑청에 위에는 색과 무늬가 가 있는 고전의 단아한 이불이 있었다.    
 
일인용 이불을 당신의 위로처럼 만지고 아끼셨던 것 같다. 지상에 와서 나를 낳으셨지만 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엄마는 혼자 생활전선에서 온 힘을 다해 싸웠고, 남매를 애지중지 길러내셨다. 몸이 낡아가면서도 나를 늘 찾고 기다리시던 당신의 외로움을 가을볕만큼이나 따갑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 당신과 함께 깁던 이불을 지금은 혼자 깁는다. 생전에 엄마는 톨스토이가 쓴 인생 이야기며, 베를레르의 시 구절‘비올롱의 긴 흐느낌’을 낭송해 주셨다. 당신이 들려주신 노래와 이야기는 이불속에 고스란히 묻어져 영원한 나의 노래가 되었다. 
 
어느 날에는 남겨진 이불이 너무 낡았다는 생각에 버리려고 마음을 먹고는 홑청을 뜯어보았다. 아! 홑청 속에는 수백 번의 바느질 자국이 꼼꼼히 작품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세상살이의 한처럼 깁던 당신의 손을 만지는 것 같아 와락, 가슴이 울렸다. 버리다니! 다시 빨아 혼자서 당신을 깁는다.    
 
건강했던 한 날, 여름 하늘 아래 가졌던 우리의 꽃밭에는 짧은 행복이 있었다. 여름 마당과 저녁 한켠에 가득 피어났던 분꽃과 포도나무를 기억한다. 
 
세상에 나와서 나를 낳으시고 작은 이불과 꽃밭을 주고 가신 엄마는 나의 작은 종이에 이렇게 펜으로 다시 사신다. 마음속에 영그는 그 먼 나라에서 무시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중에서 
  
엄마의 이불 같은 노래가 소나무 아래 잠들고, 그 곁에서 나는 다가 올 고향을 생각한다. 
저 먼 나라도 어머니도 고향에 여전히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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