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힘이 센 장군이었던 항우(項羽)의 별명이 초패왕(楚覇王)이었는데, 항우의 집안은 원래 진시황에게 통일되기 이전 초나라의 관리였기 때문에 유방(劉邦)과 싸울 때 초패왕이라고 불렸다. 
 
초나라는 중국에서 가장 긴 장강(양자강)의 중류에서 시작되었고 춘추시기에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춘추시기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황하(黃河) 중류를 중심으로 하는 주(周)나라를 중원(中原)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초나라는 사실 남쪽의 오랑캐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초나라는 춘추시기와 전국시기를 통틀어 진시황에게 멸망한 기원전 223년까지 약 8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였다. 
 
그 오랜 역사기간 동안 비록 중원의 국가는 아니었으나 춘추오패의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장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나라를 제외한 중원의 나라들은 자신들을 왕이라고 지칭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주나라 왕으로부터 책봉을 받은 제후국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나라는 자신이 주나라와 상관없이 발전한 국가였기 때문에 왕이라는 칭호를 거리낌없이 사용하였다. 
 
초나라의 22대 군주였던 목왕이 급사하고 왕위를 물려받은 이가 바로 초장왕이었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나라는 반란으로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얼마후 정국이 조금 안정되자 초장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매일 술과 쾌락에 빠져있었다. 이후 3년이 지나자 당시 충신이던 오거가 목숨을 걸고 왕에게 간언을 하게 된다. 
 
오거는 “언덕의 새 한 마리가 3년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어떤 새입니까?”라고 하면서 왕에게 정신을 차릴 것을 권했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불비불명(不飛不鳴)’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큰일을 하기 위해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거의 말에 초장왕은 웃으면서 그 새가 한번 날면 하늘을 찌를 것이다고 했는데 한자로 일비충천(一飛衝天)으로 같이 사용되고 있다. 
 
초장왕은 자신이 음주가무로 세월을 보내던 3년간 자신에게 아부했던 간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부국강병에 힘쓰기 시작했다. 우선 이전에 초나라를 침입했던 용(庸)나라를 합병하고 빠르게 서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송나라를 공격하여 자신의 아래에 두었고 서쪽의 융을 정벌했다. 그리고 진(陳)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초나라는 중원의 어떤 국가에도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세력이 중원에게 위협이 되었다. 결국 중원의 국가들은 초장왕에게 패왕의 지위를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초장왕과 관련된 일화로는 그가 아끼던 말이 있었는데 그 말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침대에서 잠을 자게 했다. 이후 그 말이 죽자 재상의 장례식만큼 성대하게 치러줄 것을 명령했다. 이때 우맹이라는 신하가 왕의 대전에 들어와 대성통곡을 하였다. 초장왕이 무슨 일인가하고 물었더니 왕께서 그렇게 사랑하는 말을 재상의 장례식으로 한다는 것은 너무 인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당연히 군왕의 예의로 말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 말을 들은 초장왕은 크게 깨닫고 말의 장례식을 취소했다. 
 
한낱 중원의 주변에 지나지 않았던 초나라가 중원에서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명한 군주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언을 하던 충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초장왕은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더라고 충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바로 고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덕을 겸비하고 있었다.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도움이 된다” 는 “忠言逆耳,利於行(충언역이, 이어행)”이라는 말을 실천하는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지도자의 결말은 우리가 상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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