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중고등학생 시절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니, 증오했다. 커서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고, 어른이 되면 늙은 아버지를 돌아보지도 않고 철저히 외면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꽤 큰돈을 벌어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도회지로 나오셨다. 아버지는 당시 유망하다는 사업들에 손을 대셨지만 하는 사업마다 실패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좀 안 된다 싶으면 또 다른 사업을 구상하는 일을 반복하셨다. 
 
사업에 투자하시느라 집에서는 쓸 돈이 없었다. 가세는 점점 기울어갔다. 중학교 재학시절 미술 준비물을 구입하지 못해 친구의 것을 빌리려다, “거지새끼!”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설움에 복받쳐 울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마지막 남은 작은 상가주택까지 팔아 빚잔치를 하고 나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상황까지 내몰렸다. 그때 필자는 고교 2학년이었다. 아버지는 집안에 계신 채 두문불출하셨다. 가족들은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차가운 얼굴로 외면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크게 싸우시고 이혼이야기까지 나왔다. “너는 누구 따라 갈래?”라는 질문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상가주택 옥상에 올라 동생들과 처연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형편이 나빠지면서 중지되었던 매일 드리던 가정예배가 생각났다. 이대로는 우리 가족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날 저녁 필자는 가족들에게 가정예배로 모이자고 했고 한방에 둘러앉았다. 어머니는 몸져누우신 채로.
 
인도자가 된 필자는 찬송을 부르고 성경 말씀을 읽었다. 그리고 무언가 말 하려는 순간, 마음 깊숙이에서 그동안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감정이 올라왔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 하지만 잘해보려다 실패한 것인데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더구나 가족들조차도 등을 돌린 상황이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였을까. 아버지가 불쌍했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아버지 사랑해요. 아버지 힘내세요.” 그것은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다 보는 앞에서 목 놓아 우셨다. 그동안 응어리졌던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던 것 같다.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까지도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날 밤은 우리 가족에게 큰 전환점이었다. 가정은 회복되었다. 
 
아버지는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세 들어 있던 친척을 내보내고 작은 식당을 여셨다. 어머니와 함께 그야말로 소처럼 일하셨다.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갔고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야 했지만 그때만큼 행복했던 때도 없었다. 
 
아버지의 두 번째 눈물을 본 것은 필자가 대학을 휴학하고 군 입대를 앞두고였다. 가정예배를 인도하시던 아버지는 기도 중에 우셨다. 아마 당신이 군대에서 당한 힘든 일들을 떠올리신 것 같다. 사랑의 표현에 서툴렀던 아버지, 그러나 그 눈물로 충분했다. 
 
아버지는 올해 팔순이시다. 늘 잔잔한 미소로 응원해 주시는 아버지. 교회 장로님으로 늘 자식을 위해 기도하시는 아버지. 오늘 왠지 그때 아버지의 눈물이 생각난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 23: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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