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교동은 세교상가1길부터 우편 취급소가 있는 5길로 형성된 작지만 아담한 동네이다. 

 
이곳의 오랜 토박이로 살다보니 골목골목 무슨 음식점이 있고 미용실과 슈퍼와 치킨집과 커피숍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한 눈에 상가지도가 그려진다. 상권 형성이 이뤄지면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음식점이 있는가 하면, 경영이 어려워져 문을 닫거나 신생 소도시로 이전하는 경우도 잦다.
 
나는 세교상가2길 중앙부분 상가건물 2층에 산다. 골목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빵집이 있고, 맞은편에는 작은 분식집과 세탁소가 이른 아침을 연다. 먹자골목 특성상 식당과 술집 노래방이 유난히 많은데 우리 건물 지하 또한 노래방이고 1층은‘찌개마을’이란 간판의 식당이다. 한집 건너에‘노을담’ ‘꾸러기’가 있는데 찌개마을과 노을담 두 식당의 주 메뉴는 수제비를 넣어 끓여주는 시원한 민물새우탕과 사태김치찌게, 두부전골, 불고기전골과 같은 국물 요리에 자신들만의 솜씨가 발휘된 맛깔스런 밑반찬이 곁들여 나온다. 꾸러기는 오리로스 주물럭과 삼겹살이 전문인데 모두들 이 동네를 지켜오는 인심 좋은 맛집이라 말하고 싶다. 마주한 앞집은 연둣빛 간판이 신선한 ‘그린그린 미용실’이다. 상권은 좁아도 서로 각자의 손님이 있는 법이라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출근하는 모습들은 늘 밝고 활기차다. 이층 유리창에서 조용한 거리를 내려다본다.
 
가게마다 작고 큰 화분들이 출입구 옆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놀랍게도 미용실과 세 식당 주인들은 나이가 비슷하여 친구처럼 지낸다. 아침밥도 서로 돌아가며 함께 먹고 차도 마시며 행복한 수다로 시작한다. 시간이 되면 동생 같은 나는 그저 수저만 살짝 걸치며 불러들이는 언니들 곁에 조곤히 앉아 애교를 더한다. 
 
식당이면서도 때로는 꽃집으로 착각을 할 만큼 꽃나무 경쟁을 지켜보는 일은 또 얼마나 쏠쏠한지 모른다. 이른 시간 가게 앞에 있는 꽃들을 관찰해 보았다. 시기별로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나무도 있고, 이미 져서 마른 꽃이 붙어있는 꽃나무 사이 으아리 작은 흰꽃이 피고, 게발선인장, 백량금 빨간 열매는 보석같이 빛나고, 제라늄, 안스리움. 호야, 스튜키, 꽃기린. 일월초, 사랑초 같은 내가 아는 꽃 일부만 얘기했을 뿐인데 그 꽃들의 좁은 서식지가 참으로 경이로운 식물원이다. 돈을 벌기 위해 나온 일터,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 사는 속사정은 행복만도 불행만도 아닌 생각의 차이다. 처해진 환경을 긍정적으로 조금만 치환할 때 하루하루를 보내는 마음도 달라진다. 그것을 이미 달관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꽃처럼 환한 일생이 쌓인다. 
물물진여차 : 세상 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독소무인지 : 나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독소부분>정약용
독소(獨笑, 홀로 웃다) 유배지 강경에서 250년 전 쓴 정약용의 시조를 읽으며 이 골목 아름다운 사람들을 더욱 귀하게 바라본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