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만남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만남의 서막과 전초전이란 부지불식간에 준비되어지고 여름과 가을의 전환점처럼 두루 뭉실하게 성립 된다.

 
행위이며 과정인 이 고귀한 의식 앞에 누구나 숙연해 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느 순간 반란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태풍의 눈처럼 거칠어지기가 십상이다. 또 다른 만남으로의 반란이 아닌 막연한 반란은 더욱 그러하다. 태양이 영원히 우리 머리 위를 맴돌 듯, 사계절이 바람을 타고 우리 곁을 스치듯, 눈비가 시도 때도 없이 세상을 내려치듯이 이들의 반란은 태풍처럼 일어나기가 일수다.
 
사람과 삶의 만남은 그래도 인정이 있다. 그러나 상황과의 맞닥뜨림은 늘 반란이 일어남을 수없이 보고 살아왔지만 이 또한 부지불식간에 저 깊은 곳으로 스며들기 또한 일수다. 
 
그리하여 우린 커다란 생채기처럼 보이는 반란의 정체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던 또 한 번의 반란을 맞이하며 숙연해 지려 한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의 교차적 관계가 아름다웠거나 불편했거나는 다만 상황 이었고, 상황 상황마다의 구비치는 전환점은 봄과 겨울의 문지방처럼 나지막한 턱 이었고, 일과 감정사이의 안개구름들은 하루가 지나가는 일상적 요식행위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으며 책상 위의 너저분한 업무들을 필통 속에 가두고 시간을 툭 툭 털어 본다.
 
미처 정리되지 못한 서랍 속 일정들도 달력 뒤 어딘가에 메모지처럼 붙여두고 서서히 일어서서 또 다른 만남의 반란을 모색하려 방향 지시등을 켜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간들을 하나 둘씩 들먹여 보면서 집을 향한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 본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한 반란들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 또한 부인 할 수는 없다. 폭풍 해일처럼 발생될 수 있는 잔잔하지만 잔인한 반란을 묻어두기는 쉽지 않은 것이 세상사이다.
 
그러나 인지해야 할 부분과 정리해야 할 부분들을 간과하면서 이들의 충돌이 마치 우연한 교통사고 인 것처럼 위장하는 치졸한 관리자의 우매한 반란도 있음은 분명하다. 
 
운전자의 과실을 교통순경의 탓으로 돌리려는 유치한 반란이나 내 탓 남의 탓조차 분별 못하는 반란 또한 허다하다. 온전히 아름다운 반란을 수긍하려는 선량들의 가슴을 저미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리석음을 깨워줄 수 있는 반란조차 아름다운 양식이 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든 회사의 문을 나서며 반란처럼 잠시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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