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이든 선명한 추억이든 상관하지 말고 생각을 되돌리게 하는 기억을 모두 추억이라 명명해 보자. 사실 기억 속에는 좋은 기억과 그렇지 아니한 기억들이 혼재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나 추악한 기억, 또는 잊어버리고 싶은 비련의 에피소드나 격하도록 분노를 야기했던 격정의 순간들도 기억 속에 묻혀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다 보면 이것저것 두서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묘책은 있다. 기억과 추억을 분리하여 보관하는 상상의 시스템을 만들어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이다. 부득이한 것은 기억을 더듬어 해결해 나가고, 아름다운 것들은 추억이라는 새로운 폴더를 만들어 저장하였다가 시시때때로 행복한 순간에 열어 보고는 다시 보관해 두면서 훈훈하고 정감 어린것들만 별도 관리하는 패러다임을 구축 해 봄은 어떨까하는 허허로운 상상을 해 본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운 기억은 곧 추억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추억을 더욱 값지게하는 것은 바로 추억 부풀리기이다. 얼마 전 아들이 써준 수필 한편이 위와 같은 장황한 허허 논리로 나를 웃음지게 한다.
 

  아들의 유년 운동장에서 아버지와 벌였던 축구시합과 달리기 한판 시합을 기억하면서 단순한 대결의 개념을 넘어 아버지가 전해주려 했던 진실의 마음을 어린 나이에 알고 있었던 기억을 추억으로 되살려 적어 내려 간 서술에 새삼 숙연해지면서 분명 아름다운 추억이라 한껏 부풀려 말해주고 싶다. 아들의 글 일부만 인용을 해 본다.
 

  『나는 과거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고, 그런 현재의 내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고 생각한다. 가끔은 뒤돌아보며 잊고 있던 아름다움을 꺼내어 보자.

  꺼내어 보면 어설픈 구둣발로 한여름에 아들과 축구공을 차던 아빠가 있고, 아름다운 두근거림이 있다. 아빠는 아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었고, 알아가고 싶었으며 행복하고 싶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때 그 시절 열심히 앞만보고 달려가던 중학생 소년의 뒤에 서 있던 아빠는 모든 순간에 나의 뒤에서 흰 웃음 띠며 서 계셨고, 넘어지지 않길 기도하며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알려 줄 준비를 하고 계셨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시절 아버지란 이름의 달리기는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지켜주는 것이란 걸...』
 

  정말 그랬었다.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도구로 잊고 있던 아득한 행복을 찾아준 아들의 글에 감동한다.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의미를 15살 어린 나이에 간파하고 있었다는 가슴 찡한 고백으로 마음껏 부풀려 보고 싶은 추억이다.
 

  진정 아름다운 추억이라 소리 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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