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학계에서는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관심이 집중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이데올로기의 대립,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대변되던 미국과 소련의 총체적 경쟁에서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지만 또 문명 간의 충돌이라는 새로운 대립의 틀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과 중국은 G2(Great of Two)라는 이름으로 경쟁과 협력을 지속해왔으나 이제는 협력의 틀을 벗어나 경쟁과 충돌의 프레임이 만들어지고 있다.2018년 그레이럼 엘리슨이라는 학자는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라는 책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는 구매력 기준의 GDP에서 2014년에 중국이미국을 추월했고 그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으며 경제, 교육, 과학, 기술, 혁신,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기원전 490년에 스파르타는 그리스 지역의 지배세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후 아테네가 경제적, 군사적으로 부흥하였고 이는 스파르타와 아테네간의 긴장관계를 조성했다. 양국은 지중해의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 기원전 446년에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발생했고 이후 각 동맹국들이 포함된 2차 전쟁으로 그리스의 황금시대는 종말을 고했다는 것이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자신의 책에서 500년간의 전쟁을 분석한 결과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는 16개가 있고 그중 12개의 사례가 전쟁으로 이어졌음을 밝혀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거나 등장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두려워하고 서로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국제조 2025’, ‘일대일로’등 슈퍼 파워차이나(Super Power China)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서방에게는 절대적 위협의 행태로 비춰지게 되었다. 이에 서방의 대표로 나선 미국이 중국에 대한 무역을 통한 공격을 개시하였고 지금까지의상황은 중국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인다. 미중간의 협상에서 중국은 마치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것처럼 보여져 미국의 완승으로 이 갈등이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미중무역의 협상 테이블에서 중국의태도는 급격히 변화하였다. 지금까지 논의된 무역협의를 거부하고 새롭게 협상 할 것을 미국에게 요구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다시 강한 공격을 개시하고 있다.
 

  미국의 완승으로 끝날 것 같았던 이 무역전쟁이 다시금 안개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입장에서 만약 미국에게 이번에 항복을 하게 되면 중국에게 ‘중국굴기(中國崛起)’의 기회가 더 이상은 없다는 강박관념이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인다. 동시에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내부와 중국내에서 위상이 급격히 추락할 것이고 시진핑 개인만이 아니라 공산당도 위협에 처할 수 있다는다급함이 내포되어 있다.
 

  중국은 ‘아편전쟁’에서의 중국의 굴욕을 다시 언급하면서 미중무역 전쟁에서의 패배는 아편전쟁에서의 불평등 조약과 같다고 중국인들에게 뼈아팠던 역사를재조명하고 있다. 이에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바람이 중국 전역을 휩쓸고 있으며 미국과의 일전을 준비시키고 있다. 이어서 ‘대장정’을 다시금 역사에 등장시켜 어떤 어려움과 역경도 중국을 좌절 시킬 수 없으며 중국인들은 미중무역전쟁의 대장정에 돌입해야 한다고 암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심지어 한국전쟁을 예를 들어 중국이 미중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고있다. 1950년 ‘항미원조’의 이름으로 연인원 290만명이 참전했던 한국전쟁을 상기시키면서 중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한국전쟁 말엽 가장 치열했던 ‘상감령 전투’에 조명을 비추고 있다.
 

  중국의 중앙방송은 항미원조와 관련한 영화인 ‘영웅아녀(英雄兒女)’와 상감령 전투를 긴급 방영하고 있다. 상감령은 철원 인근의 오성산에서 미군과 중국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우리가 파악한 것은 미군과 한국군의 사상자가 7,800명, 중국군은 1만천명으로 중국군의 피해가 훨씬 컸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중국이 이 지역을 지켜냈다는 이유로 ‘상감령 정신’이 미군을 이겼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조국과 인민의 승리를 위해 일치단결하고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감령 정신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미중간의 갈등에서최종의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아편전쟁, 대장정,한국전쟁의 기억까지 다 꺼내다 사용하고 있다. 이에 더해 중국군 수만 명이 죽어 피로 물들었던 ‘파로호’의 이름을 고치라고 한국정부에게 강요하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상감령 전투는 미국과 중국을넘어서서 한국의 경제를 더욱 어려운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서 한국이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고 잘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타인들에의해 생각지 못한 위기 속에 빠져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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