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언 발을 녹이려 모닥불에 발을 가져다 대면 영락없이 구멍이 생긴 양말을 매일저녁 기워 주시던 등잔불 및 어머니의 반짓고리가 생각난다. 다음날 아침 이중으로 덧붙여진 두툼한 양말로 변해있던 기워진 양말을 신으며 새것처럼 좋아했었다. 이렇듯 물려받음이란 단순한 그 물건의 사명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린 이 물려받음의 문화를 전통 계승 하면서 오늘의 기적을 이루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것보다 정감이 있고 쓰던 이의 마음이 묻어있는 가치의 내재는 우리 정신문화를 개척하고 발전시키는데 무한한 공헌을 했음이 자명하다. 큰 조카의 자녀들이 과년해 지면서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을 했고 공부방을 정리하면서 유년의 책들이 용처를 잃고 밧줄로 오라를 진채 툇마루로 끌려 나왔다.
시급한 구원이 필요했다. 이 책들을 소진할 대안도 논의 하고 싶다 하여 동생 내외와 함께 고기를 종류별로 사 들고 거나한 점심을 위해 누이의 집으로 모여 들었다.
급조된 점심모임에 여 동생 내외까지 합세하여 그럴듯한 식사와 담소로 하루를 지내고는 밧줄로 묶인 채 눈만 껌뻑거리는 책 무더기들을 차로 옮겨 싣는다.
평소 거의 매월 생일 모임을 기하여 우리 형제들은 식사를 한다. 이번 달에 책들의 용처를 핑계로 모임을 한 번 더 갖게 된 셈이다. 이 모임 또한 선친의 유지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지속하면서 가족 간의 우의를 다지는 기회로 전통처럼 이어오고 있다. 이제 이 책들의 용처는 우리집안 새싹들인 손자들이 될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물려받았고 우애를 통한 화목을 이어받았고 화합과 인정으로 끈끈한 가족애가 이어 지는 동안 이 책속의 양식들은 지식과 지혜와 진리를 겸비한 물려받음의 새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관심과 배려와 사랑의 고리로 이어지는 역사적 대 물림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갈 것이다.
물려줌의 미학을 마음속에 그리며 예쁘게 성장할 손자 손녀들의 밑그림을 상상하면서 책 물림의 역사적 대 장정을 시작하려 한다. 그 어느 여행보다도 값진 나눔의 순간들이 될 것이다.
손자 손녀들을 보고 싶은 핑계 치고는 참 아름답고 위대한 계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