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형제가 7남매 8남매가 되된 시절 제 각기 새 옷이나 신발 등을 구입하기가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당연히 형이나 언니의 것들을 물려 입거나 내려 받아 사용하면서 손때가 묻었거나 솔기가 헤어진 옷을 걸쳐 입으며 형의 행실을 따라 하기도 했음이 분명 하다. 소꿉놀이를 좋아 했던 언니의 옷자락은 조심스레 흙물이 들어 있었지만 정성껏 손질한 엄마의 솜씨에 가려져 그대로 동생에게로 대 물림 이 되었고 소매를 걷어입던 겨울 내복은 구멍 난 팔꿈치 부분을 잘라 붙여 길이가 짧아지면 바로 동생의 소유가 되었으리라 생각 해 본다.
 

  유년시절 언 발을 녹이려 모닥불에 발을 가져다 대면 영락없이 구멍이 생긴 양말을 매일저녁 기워 주시던 등잔불 및 어머니의 반짓고리가 생각난다. 다음날 아침 이중으로 덧붙여진 두툼한 양말로 변해있던 기워진 양말을 신으며 새것처럼 좋아했었다. 이렇듯 물려받음이란 단순한 그 물건의 사명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린 이 물려받음의 문화를 전통 계승 하면서 오늘의 기적을 이루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것보다 정감이 있고 쓰던 이의 마음이 묻어있는 가치의 내재는 우리 정신문화를 개척하고 발전시키는데 무한한 공헌을 했음이 자명하다. 큰 조카의 자녀들이 과년해 지면서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을 했고 공부방을 정리하면서 유년의 책들이 용처를 잃고 밧줄로 오라를 진채 툇마루로 끌려 나왔다.
 

  시급한 구원이 필요했다. 이 책들을 소진할 대안도 논의 하고 싶다 하여 동생 내외와 함께 고기를 종류별로 사 들고 거나한 점심을 위해 누이의 집으로 모여 들었다.
 

  급조된 점심모임에 여 동생 내외까지 합세하여 그럴듯한 식사와 담소로 하루를 지내고는 밧줄로 묶인 채 눈만 껌뻑거리는 책 무더기들을 차로 옮겨 싣는다.
 

  평소 거의 매월 생일 모임을 기하여 우리 형제들은 식사를 한다. 이번 달에 책들의 용처를 핑계로 모임을 한 번 더 갖게 된 셈이다. 이 모임 또한 선친의 유지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지속하면서 가족 간의 우의를 다지는 기회로 전통처럼 이어오고 있다. 이제 이 책들의 용처는 우리집안 새싹들인 손자들이 될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물려받았고 우애를 통한 화목을 이어받았고 화합과 인정으로 끈끈한 가족애가 이어 지는 동안 이 책속의 양식들은 지식과 지혜와 진리를 겸비한 물려받음의 새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관심과 배려와 사랑의 고리로 이어지는 역사적 대 물림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갈 것이다.
 

  물려줌의 미학을 마음속에 그리며 예쁘게 성장할 손자 손녀들의 밑그림을 상상하면서 책 물림의 역사적 대 장정을 시작하려 한다. 그 어느 여행보다도 값진 나눔의 순간들이 될 것이다.
 

  손자 손녀들을 보고 싶은 핑계 치고는 참 아름답고 위대한 계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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