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6월 영국군이 청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아편전쟁의 시작이었다.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전 오랫동안 영국과 유럽은 중국의 차와 도자기에 열광하였고 이는 영국과 중국간의 무역 불균형을 초래했다. 무역적자가 계속 쌓여가자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 사이에 아편은 쉽게 퍼져나갔으며 지금까지의 무역구조는 역전되어 중국의 은이 대량으로 영국
으로 유출되어 중국 경제가 급속히 어려워졌다. 이에 청나라는 임칙서를 특사로 파견하여 영국의 아편무역을 막도록 하였다. 임칙서는 2만 상자가 넘는 아편을 몰수하여 불에 태웠다.
 

  영국은 의회의 토론을 거쳐 아편 몰수는 영국에 대한 공격이라는 명분으로 20척의 함선과 4,000명의 군대를 보내 중국을 공격하였고 결국 중국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남경조약’을 맺었다. 아편전쟁은 영국과 중국의 무역불균형이 초래한 전쟁이었고 이후 70년이 지나 청나라 왕조가 멸망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2세기가 지나 서방을 대표하는 미국과 중국간에 새로운 무역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세계의 공장’이 된 값싼 중국 제품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환영을 받았고 중국은 두 자리 수의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리면서 국가 채무가 늘어나자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 조치라는 카드와 중국산 제품에 대한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중무역전쟁이 시작되었다.

  강한 미국을 주창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미중간의 무역적자를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마치 아편전쟁을 일으킨 당시의 영국의 의회가 데자뷰되는 대목이다.
 

  2018년 7월 미국은 예고했던 것과 같이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해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했
다. 중국도 미국의 농산품, 자동차, 수산물에 대해 340억 달러 규모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미중무역 전쟁
의 서막이 열렸다. 미국의 선공에 중국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의 증시가 하락했고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떨어졌다. 중국의 고정자산 투자는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소매판매는 약세를 보이고 수출 지역이던 광동성의 기업들이 줄도산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상호관세 보복을 해도 미국이 유리한 지위에 놓여있다. 중국의 대미 수출액이 5천억 달러인데 비해 수입은 1300억달러이기 때문에 같은 규모로 보복해도 미국은 2500억 달러 이상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중국은 미중무역협상이 진행되면서 미국에 대해 양보를 시작했다.

  시진핑이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중국제조 2025’는 자취를 감추었고 지적재산권과 기술이전에 관련한 부분도 대폭 양보하여 미중무역전쟁이 정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을 고치기 위해 중국내 법률의 법제화 계획을 합의문에 담을 것을 요구했다. 그 요구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마치 아편전쟁 이후에 불평등했던 남경조약이 떠오른 듯하다.
 

  중국의 대표인 류허 부총리는 ‘원칙 문제들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기 시작했고 중국 정부도 법제화는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받아들여 결사항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중국의 불복에 대해 모든 중국 제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포하여 미중무역전쟁은 또 다른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 몇 주간의 시간은 남아있고 트럼프와 시진핑의 회담이 있어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는 모른다.

  다만 미중간의 무역전쟁은 한국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국제경제에도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