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년 열두 달 중 5월과 10월을 특히 좋아한다. 아마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으면서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색조를 띄는 때가 바로 이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5월의 신록은 정말 숨이 벅차오를 정도다. 싱그러운 바람이 그렇고, 온갖 색색의 꽃들과 나무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어디 멀리 가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온통 아름다운 색깔을 입은 자연을 본다. 무엇을 해도 좋을 그런 시간들을 우리는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화려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한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한 감정들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삶이 팍팍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절망 속에서 삶을 포기하였다는 아픈 뉴스들도 자주 들려온다. 비록 극단적인 선택까지 안 갔더라도 이런 저런 절망과 우울함이 섞인 사연들도 많다.
 

  어린 시절 필자의 눈에 어른들은 매우 단단해 보였고 모든 어려움들 헤쳐 나갈 만큼 강해 보였다. 정작 그 나이의 어른이 되고 보니 삶이 정말 만만치 않음을 절감할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 노년들이 살아온 날들이 항상 평탄하기만 했을까?

  몰라서 그렇지 다들 그만 그만한 사연들과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며 살아온 나날이었을 것이다. 성경에, “백발이 성성한 어른이 들어오면 일어서고, 나이 든 어른을 보면 그를 공경하여라”(레위기 19:32)는 말씀
이 있다.

  나이 많은 노인들을 공경하라는 뜻 이외에도, 그동안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온 날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 누구의 삶도 그저 쉽기 만한 삶은 없다.  몇 주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부문 대상을 수상한 연기자 김혜자씨의 수상소감이 큰 화제가 되었었다.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의 대사를 인용한 수상 소감 중 일부는 이러하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이제 80의 나이에 가까운 노 연기자의 말은 큰 울림을
준다. 삶에 대한 정말 멋진 찬사이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에스겔 16:6). 환영하는 이 없고 돌보는 이 없는 참으로 불행할 것만 같은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신이 우리에게 선사한 생명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힘든 일도 있지만 이미 그 많은 어려운 세월들을 견디고 이겨낸 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증인처럼 있다.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걱정들 때문에 정작 오늘을 불행하다고 느끼며 우울감에 젖어 사는 것은 어리석다. 누가 그랬던가,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었다고.

  오늘은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의 날들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날들이 어떠하든,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가 또한 어떠하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다시 수정할 수도 지울 수
없는 나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신이 나에게 허락한 오늘 하루, 더구나 이렇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날들을 힘 있게 살아갈 것이
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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