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문인협회
평택시 문인협회
  도서관에서 펼치는 유적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이른 아침 여정을 위해 모인 일행은 “오늘 여행을 위해 월차를 낼 수 있어요”하며 해맑은 얼굴들로 생기를 서로 뿜어주고 있었다.

  ‘붉은 볕’ 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양에서 도담삼봉과 사인암을 두루두루 다녔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엮은 오랫동안 겹겹이 맺은 유적을 읽으며 시간을 잡아채듯 수첩에 적었다.

  오른쪽 창가로 첩첩이 겹친 산봉우리와 칸나꽃 맨드라미가 달려 간다. 산빛이 차분해지고 푸르름이 서서히 정지한다. 얼마나 징글징글한 폭염이었던가, 내년 여름을 맞이하기가 두렵지 않나! 수박과 참외는 달고 달았지만 펄펄 끓는 탕에 몸과 마음이 데여서 놀라고 멍한 계절이었다. 지금 창가 풍경은 서늘하고 아름다워 내 삶의 새로운 타이밍과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천등산 휴게소에서 내렸다가 나무를 깎아 만든 초록색을 입힌 작은 코끼리 하나를 오천원을 주고샀다.  그 발길로 고구려 테마공원을 한바퀴 휘익 돌았다. 먼 옛날 나의 선조들이 말을 타고 고구려 백제 신라를 오고갔던 땅에서 나는 잠깐 예쁜 코끼리를 들고 남한강 줄기에 서 있있다.

  도담삼봉에서 내려 삼봉을 찾았다. 도담에 떠 있는 세 봉우리는 살아있는 작은 절벽이었다. 전날 큰비가 내린 뒤라 남한강 물속에 폭빠져 작아진 유명한 도담삼봉을 처음 보았다. 강 너머 수수밭에서는 새를 쫓는 총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커져만 가는 객지에서 사인암 계곡 물소리를 따라 돌며 낯섬에 듬뿍 안기는 묘한 안정을 느꼈다.  돌벽으로 우뚝 솟은 사인암은 넓고 납작한 바둑판 무늬가 선명한게 자연의 작품이라는 자세와 모양에 놀라웠다. 물에 앉은 대청마루만한 희고 반듯한 바위에 올랐다가 고려말 학자인 우탁의 시조가 돌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손에 가시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져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탄로가’는 늙음을 한탄한다. 덧없는 세월을 가시로 막고 막대로 치려해도 지름길로 닥친 늙음을 이렇게 긍정하며 익살스럽게 표현했으니, 고려와 조선을 지나 대한민국의 시간이 우탁의 시 앞에서 한 점으로 공감 되었다.

넉달 전, 모내기가 끝났을 때, “낼 모래 벼 벤다는 말 나와!” 하던 농부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번여름을 견디고 살아났지만 지나고 나니 어느새 들에 벼가 패어 동글동글한 알맹이들이 익고 있었다.

생활에 매이고 따로 여행 기회가 드물었던 나로서는 도서관의 주선으로 단양 탐방을 버스와 걷기로 여행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활인산수活人山水의 땅에서 오늘 다시 살아나, 나의 공동체를 위한 산과 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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