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철에는 노약자석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노약자석으로 표시는 되어 있으나 주로 노인들이 앉는다. 그래서인지 아기를 안은 엄마나 임산부들이 힘들게 서 있으면서도 노인이 앉아 있으면 어려워하는 마음에서 잘 앉으려 하지 않는다.

  앉으라고 권유를 하면 마지못해 앉기도 한다.
  어찌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노인을 어려워하며 노인 앞에서 겸양의 도를 보이는 젊은이들이 있음에 대견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또 나이에 비해 아직은 건강해서 노인들의 전철 이용도도 점점 많아져서 그나마 경로석이 만석일 경우가 많다.

  가끔 전철 안에서는 경로석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외모로 보아 경로석에 앉을 나이가 아닌 사람이 버젓이 앉아서 노인이 탔는데도 모른 척 하고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때문이다. 웬만하면 다툼 없이 노인이 그냥 서서 가는 데 간혹 노인 중에도 성격이 예민한 분은 이런 염치없는 사람을 향해 대놓고 일어나라고 호통을 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젊은이가 아무 대꾸 없이 일어나 주면 되는데, “나도 65세가 된 사람이요!”라고 맞서며 볼썽사나운 나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젊은 사람이 아픈척하고 눈 꾹 감고 잠에 취한 듯, 약에 취한 듯, 뻔한 위장술을 쓰는 사람도 있다.

  한 번은 필자가 앉아 있는 맞은 편 경로석에 사복 차림의 미군으로 보이는 백인, 흑인, 남·여가 섞인 7~8명이 셋은 경로석에 앉고 나머지는 주변에 손잡이를 잡고 서거나 근처 일반인석에 앉아 가면서 주변의 승객들에 대한 아무런 의식없이 자기들 끼리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전철이 다음 역에 도착할때마다 승객들이 오르면서 노인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노인들에게 자리 양보도 없이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경로석 창문 위에는 노약자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시한 표지판이 있어서 누구나 보면 알게 되었는데도 아랑 곳 없이 이들은 자기들 지정석인양 너무도 태연했다.

  이 광경을 보고 가야하는 필자 자신도 이들의 행태에 대해 화도 나고 해서 이들의 무례한 행동을 제지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막상 실행에 옮기자니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어 서서가는 한 할머니에게 내 자리를 양보했다.

  이 광경을 본 내 옆자리에 앉아 가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시더니 또 다른 서서 가는 할머니 손을 잡아 이끌고 미군들 앞에 가서 우리말로, “야이 사람들아 일어나! 여기는 노인석이야!”라고 호통을 치니 그제야 아무런 반항 없이 그 덩치 큰 미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비실비실 다른 곳으로 피해 갔다. 이 광경을 본 나는 남자가 되어 내가 먼저 했어야 할 일을 이 할머니가 용기 있게 하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한편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미군을 비롯한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졌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할 때 우리나라의 문화나 기초적인 사회규범에 대하여 사전 교육을 받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없었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런 과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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