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절도 채 안 된 시간인데 중·고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는 모습을 본다. 7월이 중순에 접어들다 보니 1학기말 고사 기간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오래전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세대들은 그 시절 기말고사 때를 기억할 것이다. 지금부터 50~60년 전만 해도 학생 수는 많고 학교 수는 적은 편이라 학급당 정원은 60명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 수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험기간이 되면 2인용 책상이었기에 한 책상에 한사람씩 앉아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부득이 학년 단위로 오전 오후 시차로 전 교실을 다 사용하여 시험을 치르거나 아니면 전교생을 동시에 같은 책상에 서로 다른 학년이 짝을 지어 앉아서 치르기도 했다.

  또 그 때는 지금처럼 의무교육제도가 아니었고 국가 보조도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수업료를 기성회 비라는 명목으로 직접 학교에 납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납기 내에 전교생이 일제히 100% 납부가 안되다 보니 선생님으로부터 수시로 기성회비 납부를 독려 받아야 했다. 그러다가 시험 때가 되면 첫 시간부터 서무과 직원들이 각 교실에 분산되어 수납대장을 들고 들어와 기성회비 미납학생들을 가차 없이 퇴장시키곤 했다. 퇴장 당한한 학생은 그길로 집에 달려가서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부랴부랴 서둘러 꿔서라도 체납된 기성회비를 마련해 주면 학교로 달려 와서 납부하고 고사장에 들어가 시험을 치렀다.

  이렇게 당해야하는 학생이나 부모의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이런 일이 고사 기간이 되면 되풀이 되곤 해도 누구도 이에 대해 항변을 하지도 않았고 납기 내에 납부를 못한 것에 대한 한탄이나 할 따름이었다. 개중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끝내 졸업을 못하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만큼 그때는 생계가 어려운 가정이 많았다. 선생님들도 오직 학생들이 납부하는 기성회비에 의존해서 월급을 받아야 했기에 수납상황이 부진하면 그나마 월급도 제 날짜에 못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 불과 50~60년 전 일이다. 지금은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 되어 무상교육이 이뤄지고 고등학생들도 상당수 정부로부터 학비 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 학생들이 수업료 납부에 대한 부담 없이 다니고 있으며 거기다 급식은 이미 이뤄지고 있지만 이제 곧 교복과 교과서, 학용품까지도 무상지급 하고 있는 지자체도 나오고 있다.

  그 때에 비해 지금은 학교도 많이 생겼고 학급당 학생 수도 지역별로 학급별 다소 차이는 있으나 중등학교의 경우 한 학급에 30명 이내로 예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교실 환경도 냉난방 시설이 잘 되어 있고 개인용 사물함도 설치되어 있다. 화장실도 양변기에 비대까지 갖춰져 있는 학교도 있다. 화장실은 청소전담원이 따로 있어 관리도 잘 되고 있다. 운동장도 웬만하면 인조 잔디가 깔려 있고 교내에도 구석구석 다 포장이 되어 있어 흙길을 전혀 밟지 않는다. 이정도로 우리 2세들의 교육환경이 선진국 수준에 와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본다. 남·여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소통, 특히 여학생들의 긴 머리와 화장, 세월의 흐름 속에 경제 발전과 함께 교육환경과 풍토도 몰라보게 변해 졌다. 그러나 닥쳐오는 변화 속에서도 우리의 전통과 체질에 잘 조화를 이루며 발전적으로 적응하는 지혜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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