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문인협회
평택시 문인협회
  가족 톡이 시끄러워 보니, 아빠가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셨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열이 높아 집으로 연락이 와 응급실로 모셨는데 폐렴이란다. 열이 39도가 넘어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의사선생님을 발로 턱을 차셔서 양팔과 양발을 묶고서야 검사를 마칠 수가 있었다 한다. 일반실에 입원을 할 수 없어 중환자실에 입원을 시켰다고 해서 식은땀이 흘렸다. 정초에 토정비결을 봤는데 그때 들은 말이 생각났다.“가족 모두 5월에 슬픈 일이 있겠네.”믿는 건 아니지만 몇 년 동안 다닌 집이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연락을 받고 심장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SRT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해남에 도착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이라 면회는 안대겠지만 담당 의사를 만나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의사선생님 말은 열은 미열이 남아있는데 염증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그런 것 같고 가래는 없다고 했다. 집으로 가 면회 시간이 대기를 기다렸다. 만난 아빠는 눈을 뜨지 못했다. 간호사 말로는 점심때 밥상을 쓸어버려 진정제를 주사해서 그렇다고 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의사 말과는 다르게 열도 높고 가래가 너무 심했다. 다음날 다시 평택으로 가야하는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집으로 가는 차안에 엄마의 울음소리와 깊은 한숨소리만 있었다. 침해이신 아빠가 사지가 묶여 왜 여기에 갇혀있는지 모르시니 얼마나 두렵고 무서우실까 싶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평택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이 진정이 안대고 누가 뭐라하기 만 하면 독설이 나가 내가 왜 이러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집에서는 좋은 소식 보다 나쁜 소식이 들어왔다. 중환자실 담당자와 담당 의사와의 통화로는 알 수가 없어 답답함이 가중됐다.

  형제들이 가족 톡에 열을 내고 다시 모두 해남으로 향했다. 언니는 의식이 없는건 진정제와 수면제를 계속 주사해 의식을 찾지 못하는 거고 의식이 없으니 식사를 못하시니 일단 퇴원을 시키고 식사를 하게 해야겠다고 해 모두 동의를 했다. 언니가 먼저 내려가 의사를 만나니 일반병동으로 옮겨 재활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재활의학과에 물어봤단다.“선생님 아버님이라면 병원에서 재활을 받으라 하실 겁니까?”그랬더니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못 하더란다. 우린 아빠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입원한 지 10일 만이었다. 안방에 모시고 수면제 기운이 떨어지니 아빠는 눈을 뜨셨다. 화장실을 가시고 싶다는데 일어서지를 못하셨다. 10일을 굶었으니 무슨 기운이 있을까? 그리고, 나서 모두 놀랐다. 엉덩이 전체에 욕창이 얼마나 심한지 욕이 나왔다. 환자를 얼마나 방치를 하면 저럴까 싶어 마음이 상했다. 미음을 드시고 조금씩 움직이고 오늘은 일반식을 하셨다. 병원에서 다 나았으니 퇴원하라고 하면 퇴원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처럼 침해환자가 오면 식사를 오래 못하면 목에 구멍을 뚫어 유동식을 투여하면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단다. 모든 원인이 진정제와 수면제 투여에 있는데 말이다. 난 아직 아빠와 헤어질 준비가 아직 되질 않았음을 알았다. 친구들이 상을 치르는 모습을 해마다 보지만 막연하기만 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준비는 영원히 되질 않을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난 아직 아빠와의 추억이 많이 부족하다. 추억의 페이지가 다 채워질 때 까지 아빠가 옆에 계시길 소원한다.“아빠! 많이많이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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