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문인협회
평택시 문인협회
  바람 부는 날이면 어느 시인은 압구정에 간다지만, 나는 가끔 헌책방을 찾는다.

  초등학교 앞 지하에 오래된 헌책방이 있다. 소풍 나온 듯 들어가 바위틈과 나뭇가지에 숨겨진 보물 찾듯이 두리번거리며 뚫어지게 책장을 본다. 간간이 들려오는 7080음악이 반갑게 흐르고 책방 주인의 편안한 미소가 있다. 어디서 이렇게들 왔는지 되는대로 어지럽게 쌓인 책더미들, 그 구석에 앉아 책을 읽는다.

  <反처세론> 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중국 작가인 구원이 지은 책이다. 도서출란 ‘마티’에서 2005년에 펴냈다. 책 제목 맨 위에는 ‘꼭 한번을 읽되, 두 번 읽어서는 안 되는’이라는 문장이 있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10번이고 읽어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책이라 다짐했다.

  책 표지는 엷은 미색과 주황색이 반반으로 디자인되었는데, 내용은 중국의 ‘역경’에 대해 사색한다. 중국 왕조의 탄생과 흥망성쇠를 기록하고 그에 대한 우려와 지혜를 우화로 담아놓았다. 한 문장으로 압축된 비유와 은유로 가득찬 ‘역경’을 일화를 들어가며 써 내려가는 글들이 내게는 단비같이 다가왔다. 앞으로 내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묻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알던 처세술은 접어두고, 재미난 이야기를 듣듯이 들려주는 31편의 반 처세론이 반짝반짝 담겨 있었다. 책을 골라 사들고 오면 뿌듯한 배부름이 있다. 집에 있는 책장을 정리해 내 놓은 책을 다시 책방에 가져다준다. 나의 책장은 점점 간소해지고, 책의 얼굴, 그 영혼이 밖으로 나타난 모양을 내 얼굴 대하듯 하게 된다.

  어린 날 한 때 꿈은 서점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종이향기에는 유년에 혼자 찾았던 시골초등학교 도서실 향수가 진하게 배어있다. 돈을 버는 일보다 책을 보는 일에 몰입했던 나의 성향이 어쩌면 먼 차원에서 떠도는 고단한 인생이기도 하지만,  소소한 행복이 있다. 입맛 없는 날 한 끼로 맨밥에 보리고추장을 찍어 먹는 일, 헌책방에서 나의 책을 고르는 일,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채송화들의 빛무더기를 무심히 바라보는 일, 시간을 느릿느릿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일이다.

  요즘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나타난 말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때의 기분”을 소확행이라 했다. 물질만능이란 병든 의식에 붕괴를 불러일으키는 소소한 행복의 심리가 실린 이 문장을 나는 사랑한다.

  시공을 담은 나무 속 책들이 가만히 늙어간다. 들장미가 지고 채송화 백일홍이 피는 6월에 또 다른 비밀의 공간, 헌책방속에 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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