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문인협회
평택시 문인협회
  1. 봄-화가의 화실은 개발이 시작되는 안정순환로에 위치한 조용한 주택이다.

  세월을 가늠하기 힘든 기둥 굵은 목련나무가 환하게 피어 있는 2층 철제계단을 오르면 새들이 목련꽃 가지 사이로 후드득 날아 올라 봄날을 달빛으로 이끄는 시간, 술 한 잔에 흥이 오른 화백님은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 옥방에 찬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랴 보고지고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을 보고지고”, 춘향가 쑥대머리를 완창하고 곧이어 해금을 연주 하시며 취흥의 최고조에 오르신다.

  그림이 그의 일평생 피붙이처럼 아직 붓끝이 마르지 않은 미완성 채색의 화려한 말 그림은 밑그림이 꽃부리를 이루고 있는 화판 같다. 평생을 그림만 그리신 나이 그윽한 화가의 내면은 어떤 향기로 가득 차 있을까, 어떤 고독과 편집과 아득한 독거가 슬프게 둥둥 떠다닐까.

  2. 여름-초록의 몸을 가진 목련나무가 그 지붕의 선풍기이고 바람이다.

  모든 애정이 부패로 진화하는 신묘한 공간, 깎아 놓은 참외나 수박이 하루살이의 이력이 되는 공존의 밥상, 낡은 삼선 슬리퍼를 끄는 바닥은 쓸쓸함으로 뜨겁다.  갤러리에 걸린 지난 시간의 그리운 공허들 오도독 비에 묻히는. 
 
  3. 가을-여수동락 나무와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다. 화실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과 장독에 떨어진 잎들, 그리고 노란 물탱크가 세월이 그린 화가의 음각화가 되어버린 가을이란 그의 계단은 노년이라 슬프고 힘든 것은 아니다.

  상실로 가는 청력에 여전히 노래하는 힘찬 그림 속 꽃과 산과 내와 바람과 비와 파란과 파도와 아규와 평온함이 혼합하여 푸르게 맞선 절규, 그의 아우성은 지금부터 신명조다.

  4. 겨울-바람의 뼈들이 파고드는 골짜기 야윈 나무의 노래를 들어보자.

  피리를 부는 합판의 푸른 피들은 연탄난로에 모여든다. 나이든 화가는 행간마다 또 늙은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걸어온 음표의 날들과 인생의 엇박자를 위해 오래도록 마음의 비워진 옷깃을 여밀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수 없이 지나며 머리카락과 피부와 마음과 당당함과 쾌락의 그릇들이 작아지고 기울어지는 나이의 햇수, 그 거울을 지켜보면서 사람과 자연의 섭리를 정리해 본다.  아직 계절은 봄으로 찻잔을 기울인다.

  봄의 노래와 여름의 부패와 가을의 장단과 겨울의 허전함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돋아나는 영원한 봄, 담배꽁초가 인생의 무게가 아닌 그의 화폭 안에서 튀어 나온 완창한 불멸의 명마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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