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수십여 년이 지난 친구 한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KBS 영상 미디어 감독으로 재직하다가 정년을 하고 지금은 D방송예술대학의 교수로 있는 친구다. 가까운 곳 부모님 집에 다니러 왔으니 보자 하여 바로 달려가서는 과거의 모습부터 아직 남아 있는지 살피면서 몇 잔의 술을 나누어 마시며 그간의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다지 큰 관심사도 아닌데 한잔 한잔을 들어 올릴 때마다 떠오르는 궁금증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까닭은 무엇 때문 이었을까. 오랜 친구라는 단한가지 이유로 꽤나긴 시간을 담소했다. 몇 순배의 술들이 사이를 돈독하게 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역사를 되짚어 보기도 하며 아쉬웠던 지난날들과 앞으로의 계획들도 나열 해 보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은 수사법이나 미사여구 등 순서도 필요치 않았었다.
그러고 보면 꽤나 긴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술과 함께 마셔 버리면서 마음과 공복을 동시에 채워준 시간 이었던 것 같다. 명심보감 언어편에 酒逢知己 千鍾少話不投機一句多(주봉지기 천종소화불투기 일구다)라는 구절이 있다. 술은 나를 아는 친구를 만나면 천 잔도 적고, 말은 뜻이 맞지 않으면 한마디도 만다! 라는 뜻이다.
친구를 만나 천 잔의 술을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시간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자주 천 잔의 술자리를 만들고 싶어진다. 주변에 이미 천 잔의 술자리를 나눈 친구들도 많이 있지만 앞으로는 이번처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궁금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 친구도 나를 반겨 줄 것인지도 궁금하고, 더욱더 화기기애애한 천 잔의 술자리가 이어질 것인지도 궁금하고, 과연 몇 명의 친구가 더 천 잔의 술자리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 인지도 매우 궁금하다.
아무튼 벗과 더불어 천 마디 만 마디의 언어들과 함께 천 잔의 술자리가 이어지기를 기대 한다. 편견과 시기와 반목과 번민이 뒤섞인 대화가 성행하는 요즘 오랜 친구를 찾아 마음을 열고 밤새워 천 잔의 술자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참좋은 세상살이 일 것 같다.
권 혁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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