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취업을 하려 할 때 반듯이 제출해야 하는 서류 중에 이력서가 있다. 이력서는 자신의 사진을 붙이고 성명과 생년월일, 주소, 학력이나 경력들을 적은 서류이다. 요즘처럼 IT시대가 아니었던 그 이전 시대에는 이력서를 손으로 써야 했다.

  이력서는 ‘내가 이런 사람이요’ 하는 것을 우선 간략하게 지면으로 나타내 보이는 비대면 얼굴이기에 진실 되게 잘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글씨를 잘 써야한다. 그 당시는 요즘처럼 컴퓨터에서 작성하는 워드프로세서가 없던 시절이니 직접 손으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채용을 해야 하는 직장에서도 특히 문서를 다루는 공직기관이나 회사의 사무직인 경우는 더욱 필기가 가능한 사람이 필요했고 그것도 이왕이면 글씨를 반듯하게 잘 쓰는 사람을 선호했다. 그래서 모집 할 때 ‘자필이력서’를 요구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필체를 보기 위함이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필체는 중요한 조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흔히 잘 쓴 글씨를 달필이라 하고 못 쓴 글씨를 악필이라 해서 달필인 사람은 채용에서도 우선 순위였고 직장에서도 인기가 높고 승진에도 유리했다.

  옛날에는 인물을 고를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즉, ‘신’은 풍채가 건장함과 바른 몸가짐을, ‘언’은 언사가 분명하고 바름을, ‘서’는 필체가 힘 있고 아름다움을, ‘판’은 이치에 맞는 바른 판단을 뜻 한다.

  이 네 가지 덕목을 보아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기준이 이 시대에 와서 합당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주 부적절 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앞서 자필이력서에 대하여 언급했지만, 사실 이 시대에는 각종 문서에 손 글씨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지고 활자체로만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글씨를 전혀 안 쓰는 것도 아니다. 국가원수도 중요한 곳에 방문하게 되면 방명록에 간단한 문구를 남기고 서명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자필로 써야 한다. 또 간단한 메모나 일기, 편지 등 특별히 문서적인 것 이외에는 손으로 쓸 수밖에 없다.

  글씨도 나만이 보고 남기고 하는 데는 아무렇게나 써도, 공식 문서나 남에게 공개되는 글씨는 아름답게는 못써도 바르게는 써야 한다.

  글씨에는 서체가 있어서 경우에 따라 맞는 서체로 써야 한다. 요즘에는 한자는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쓰지만, 거의 한글을 쓴다. 한글에도 서체가 있어서 전에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워 익혔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모든 게 기계화 되어 더 빠르고 정확한 활자로 표현할 수 있으니 구태여 손으로 쓸 필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글씨 쓰는 것을 보면 필순도 서체도 모른 채, 겨우 자음 모음만을 결합시킨 글자로 뜻만 표현한 것이다.

  한말로 글씨의 아름다움이란 찾아 볼 수가 없다.  프랑스의 진화론자 ‘라마마르크’의 ‘용불용설’에 의하면, 동물의 기관 속에는 환경· 습성 등에 의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생겨, 전자는 발달하고 후자는 쇠퇴해 버린다라고 했다.

  글자를 손으로 안 쓰고 자판으로 활자로만 표현하다 보니 자연 글씨가 퇴화 되는 게 아닌가 한다.  따라서 자필이력서도 이젠 추억 속에 남은 문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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