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생애 처음으로 새해 해맞이를 위해 동해로 떠났다. 정동진 혼잡한 새벽을 탈출해 옥계 해수욕장에서 찬란한 태양과 마주했다.

  침착한 자연의 의연함에 흠뻑 씌워진 상술 가득한 바가지와 무질서 앞에서 태양의 얼굴은 노랗게 눈부셨다. 올해는 예천 예당저수지에서 무술년 새해맞이를 했다.

  한 해 기쁨과 소망 건강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새벽 입김을 피우며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생각하며 나도 그들과 같은 소망을 빌어 본다.

  새해가 주는 평화로운 안이함과 새로운 계획과 가늠할 수 없는 늙지 않는 꿈으로 해마다 내 얼굴은 주름이 없다. 오늘은 늙은 언니와 형부들을 위해 밥상을 준비했다.

  나이 앞에 기백과 웃음이 약해지는 생의 후반전 어른인 그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내 손은 기쁘면서 슬프다. 비린 것과 고기를 멀리 하는 내 입 맛으로 토속적 상차림을 한다.

  끓는 물에 말린 무청 시래기를 푹 삶아 시래기 밥과 보글보글 된장국을 끓인다. 시래기 국 뜸을 들이면서 어린 시절 겨울 아침을 기억해 본다.

  창문에는 눈꽃으로 핀 성에가 여린 손톱으로 긁히고 쩍쩍 달라붙는 문고리를 열면 반찬이라고는 동치미와 김장김치 그리고 한 냄비 되직하게 끓여 낸 뜨거운 시래기 된장국이 전부였던.이 세상 푸르게 와서 시래기처럼 말라 저 세상 거름인 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앞서 간 사람들의 온기 가득했던 발걸음과 푸른 잎, 꽃과 낙엽들을 생각하며 성숙해진다. 그리고 따스해진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일이 사람살이다.

  정해진 법칙이란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슬픔보다 기쁨이,  불행보다 행복이, 그늘보다 양지가, 쭈그림보다 펴짐이, 어디 할 말이 이뿐 이겠냐만 국물의 간이 조금 맞지 않더라도 우리의 순간은 오늘이고 지금이다.

   지금 따스한 국물을 마시는 당신 추운 계절에 말하세요.

  펴지면 주체할 수 없는 계절이 곧 갈 것이라고, 봄이라고.

  조금이라도 양지가 되어 사계의 은근함 되어도 좋으련만.

  시래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은 말을 한다.

  절망 일 때 소망을 말하고 진솔한 웃음을 가지고 싶다면 은근히 기다려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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