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정이든 어린아이 걸음마에 탄성 한 번쯤 울려 퍼지지 않은 집은 없을 것이다. 아들 딸 들이 그렇게 일어서서 첫걸음마를 시작으로 성년이 되었고, 이제는 손자 손녀들의 걸음마에 함박꽃을 피우는 가정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우리 사람들 모두가 걸음마를 시작으로 세상에 나와 있음을 조금은 망각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때도 있다.

  우리가 부모란 이름으로 자식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 부모님들 또한 똑같은 마음으로 나를 키워  내신 것을 혹시라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오늘돌을 앞둔 손자가 첫걸음을 떼었다. 엎치고 뒤치며 손을 짚고 일어서더니 드디어 한 걸음을 떼다가는 다시 주저앉고 재차 일어서 금세라도 걸어갈 듯 걸음을 옮긴다. 엄마 아빠가 그리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일어서려는 본능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당연히 대대로 물려받은 본능이란 걸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한순간 걸음마에만 국한된 본능이라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 걸음걸이가 부모를 닮고 행실과 언행이 또한 닮아가며 사고와 의식이 흡사해지면서 세상의 한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유년 나의 걸음걸이가 아버지를 닮았다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전언에 의하면 멀리서도 나의 걸음걸이를 보면 아무개 아들 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고 하셨다. 이후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와 음색이 닮았다고 했다. 점점 사회인이 되면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부분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또 어떤 것들이 아버지를 닮았을까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꽤나 많은 것들이 닮아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닮았고 아들이 나를 닮았다. 이제 첫걸음을 뗀 손자가 아들을 닮았으리라 확신한다. 이는 걸음걸이와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행동거지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품격이 닮아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닮고 닮아도 부족한 것이 부모님의 지성이다. 평생을 따라 해도 닮을 수 없는 이유는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신을 부모님께 아뢸 때는 불초(不肖)라 한다.

  평생을 따라 해도 헤아릴 수 없는 부모님의 은혜를 존경하고 숭상하기 때문이다. 이제 첫걸음을 뗀 손자 준영이가 돌잔치를 치르고 나면 일취월장 성장할 것이다. 내가 그러했고, 아들이 그러 했듯이 부모를 닮아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을 믿는다. 세상의 귀감이 바로 부모님이란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온 나의 지론이다. 영
원히 따라올 수는 없겠지만 꾸준히 닮아오는 귀여운 모습을 상상한다.

  그 첫걸음의 의미는 바로 닮음의 시작 이란 것을 손자가 알아 가는 날 또 다른 걸음마를 꿈꾸는 날이 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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