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앙인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그렇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두 가지 법이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법입니다. 이 둘 사이의 관계는 매우 각별합니다. 어느 때는 강력한 동일성도 있을 수 있고, 또 때로는 강력한 단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3.1운동 당시 기독교인들은 당시 다른 종교인들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주도했는데,  그 때는 강력한 동일성이 작용합니다. 대한민국의 주권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는 같은 것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몇 년 전 이 나라에서 종교재단이 선교를 목적하여 세운 학교에서 예배를 금지시키는 일을 하겠다고 국가가 나서려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도대체 이런 법을 추진하려는 몰지각한 사람들을 누가 그 높은 자리에 앉혀 놓았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국가와 종교, 두 ‘다스림’ 사이의 강력한 단절을 초래할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최근 너무나 밀착되어 있는 ‘세상’과 ‘교회’사이의 동일성을 염려합니다. 표면이 아니라 이면에서 함께 입을 맞추고,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기승을 부리는 ‘세속적 가치’들을 걱정합니다. ‘목표의 달성’을 위해 ‘삶의 다양하고 풍성한 의미들’을 유린하고 줄세우는 인간의 욕심을 경계합니다.

  자본만이 자유로운 신자유주의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돈도 아닌 미국 돈, 일본 돈의 환율 변화에 심하게 요동치는 우리 현실의 비참함을 통감하며, 이런 시대에 과연 교회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어떤 목사님들은 상황이 그러니까 위기의 순간에 넘어지지 않도록 ‘돈을 많이 모아 놓자.’라고 말합니다. 더 부자가 되면 괜찮다는 겁니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건 돈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상황에서 ‘돈을 비축하는 길’이 아니라,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얼마든지 다른 세상이 가능합니다!”라고 말이지요.

  ‘목표’에서 ‘의미’로의 가치전환이 이루어지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시대 교회의 매우 중요한 대사회적 책임과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생활의 패턴이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가나안을 향해 달려가는 목표중심적인 것이었다면, 현재의 삶에 요청되는 교회의 역할은 이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행복의 의미’를 깨닫고 그 길 위에서 거룩하게 살아내는 의미로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신지요? 왜 그 일을 하려고 하시는지요?

  그 목표에 가는 과정, 바로 지금이 최고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한 명 준
서정교회 담임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 세인폴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현재 서정감리교회 담임목사로서
감신대와 평택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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