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환경에서 감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고, 똑같은 환경에서 불평과 원망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말입니다. 불평은 때로는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는 출발이 되기도 합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예스맨들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각종 불편한 것들을 찾아내고 개선 시켜서 공동체의 유익을 끼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게다가 적당한 경쟁은 우리에게 더 윤택한 삶을 선물합니다. 문제는 감사 없는 원망과 불평 경쟁이겠지요.

  나는 감사에 대해서 말할 때, 근본을 기억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로부터 시작된 감사는 늘 상대적입니다.  저 사람보다 큰 것에 대한 감사라든지, 저 사람보다 작은 것에 대한 불평 등은 우리로부터 시작된 상대적인 감사입니다. 아직도 삶 속에는 많은 불공평이 존재하며 그 불공평은 감사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닌 그분으로부터 시작된 감사는 많은 불공평을 넘습니다.

  이 감사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우월감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삶을 통째로 허락하신 분에 대한 절대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떤 분의 설교를 듣다가 적어 놓은 구절입니다.

  내가 감사의 사람인가? 아닌가? 를 테스트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만약 오늘 아침 밥상을 받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하기 전에 무슨 반찬이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 바로 숟가락을 놓으십시오. 언제까지 놓아야 합니까? 감사의 마음으로 밥상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만약 외출하기 위해 옷을 입으실 때, 감사 이전에 옷이 이것 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드시면 바로 그 입은 옷을 벗으십시오. 언제까지 벗고 계셔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 입을 수 있는 옷을 주시니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올 때까지... 만약 오늘 아침에 직장에 출근하시면서, 감사 이전에 아 진짜 다니기 싫다. 너무 지겹다. 이런 생각이 드시면 바로 출근하셔서 총무과에 월급 지급 보류를 신청하십시오. 언제까지 그래야 합니까?  하나님 일한 댓가를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만약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생각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기 이전에 ‘자식이 아니라 웬수’라는 말이 나오거든 당장 자식과 떨어져 사십시오. 언제까지? 하나님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살게 하시니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나올 때까지..... 만약 여러분의 집이 좁아터진 거지의 소굴 같다고 여겨지거든 오늘부터 교회에서 철야하며 주무십시오. 언제까지? 그래도 내 쉴 곳은 나의 집인데 작아도 좋은 집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까지 말입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감사할 일 보다는 원망이 앞섭니다. 그러나 진짜 소중한 감사는 모든 사람들이 불평하는 바로 여기서 더욱 향기롭습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그 사람 때문에 즐거운 그런 사람이 한 사람씩은 꼭 있습니다. 나와 여러분이 그런 사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한 명 준
서정교회 담임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 세인폴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현재 서정감리교회 담임목사로서
감신대와 평택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