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문인협회
평택시 문인협회
  여행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1인용 텐트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사십 년을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툭하면 텐트 걷듯이 보따리를 꾸려 집을 옮기는 사람이 있다. 집을 자주 옮기는 일도 습관인가 싶어 가만히 풀어놓지도 않은 짐을 바라본다.

  까마득한 옛날 속에 나는, 시골 장터에 세워진 유독 눈에 들어 왔던 ‘여인숙’이, 왜 ‘인숙’이란 이름을 간판에 내 걸었을까를 궁금하였던 적이 있다. 가장이 되신 엄마와 내가 채전이 푸른집을 뒤로하고 나온 새벽길,  그 안개 아래 작은 보따리들이 역마의 시작이었다.

  가을 햇볕 아래 노출된 이삿짐은 잠시, 풍경으로 오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침묵하는 쉼표의 모양이 있다.  바깥 환경으로 인한 과도한 쫓김이 행동이 되어 거처를 옮긴다. 가족이 하나로 묶어져서 이사행렬에 오른다. 마음이 중심에서 멀어질 때, 길과 집은 반대 방향으로 당긴다. 비 오는 날에도, 꽃피는 날에도, 바람 부는날에도 사람은 크고 작은 이삿짐이 된다.

  나의 언니는 내가 이사한다는 소식에 ‘5년에 한 번씩은 이사하는 것도 괜찮다, 저절로 정리 정돈이 되니까!’ 라고 위로해주었다. 세월의 짐을 가려내어,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으니 인생의 정리이기도 하다.

  아끼는 소품들은 짐 속에 섞이기 전에 따로 가방에 담아 자동차에 실었다. 그리고 찹쌀 시루떡을 해서 옮겨 간 집에서 일하며 함께 먹고 이웃과 나눈다. 밤이 되면 어설픈 방에 그나마 불을 때며 잠을 청한다. 이사 다음날에는 비가 내리고 하늘에 쌍무지개가 떴다. 동쪽 하늘을 가리키며 작은 아들에게 무지개가 떴다고 요란을 떨어도 아이는 무지개에 대한 감응이 ‘그래요’하며 시큰둥하다.

  릴케 시인은 ‘지금 집이 없는 자는 집을 짓지 않는다’고 했던가,  곳곳에서 집들이 지어진다. 무자비하게 오르는 아파트들은 여러 곳에 주소를 둔 비둔해진 주인을 기다린다.

  오늘은 못다 푼 짐들을 풀어 제자리에 놓았다. 밖으로 나가니 그 사이 가을이 깊어 나뭇잎들이 붉게 환하다. 

  이사는 삶이고, 고단한 삶도 풍경으로 무르익으면 단풍이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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