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한 50~60년 전 우리의 삶을, 요즘의 삶과 비교하면 ‘천지차’라고나 할까 정말 열악 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기초적인 의, 식, 주생활 자체에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를 받아다 사카린을 타서 끓인 ‘꿀꿀이 죽’, 국제 사회로부터 원조 받은 헌 옷가지인 구제품의류, 이런 것으로 먹고 입고 하루하루 고달프게 살아갔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를 6.25전쟁 직후의 시대로 본다면, 이 시대를 좀 지나 새 마을 운동과 산업화 사회로 이어 가면서 국민이 기를 쓰고 일을 하여 먹고 쓸 만큼만 남기고 모두 털어 수출을 해야 했다.
100억 불을 수출하여 1000불의 소득을 올리는 게 목표였고 공공건물마다 거리거리마다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이라고 쓴 간판이 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 한번 잘 살아보자고 정신 차려 몸부림 치던 시대였다.
이때는 꿀꿀이죽은 아니더라도 식량 절약을 위해 잡곡혼식, 분식을 해야 했다. 가전제품도 흑백 TV 한 대만 있으면 만족했고 그것도 미제나 일제면 최고로 알아 주었다.
100억불어치의 수출을 지향한 시대인데도 거리에는 우 마차와 지게꾼이 화물 수송을 담당 했다. 주택도 옛날부터 살아오 던 초가집이나 불럭 벽에 양기와 집이면 신식 문화주택에 속했다.
수세식 화장실이 다 무엇인가, 수거식 변소로 오물은 과수업자나 일반 농가에서 거름용으로 단골로 맡아서 쳐가곤 했다.
아마 요즘시대에 태어나 사는 세대들은 이런 이야기들이 아프리카 후진국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불과 50~60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살았던 우리가 지금은 연 간 5천억 불이 넘는 수출을 하고 교역량이 세계 10위이며, 국가경쟁력 순위도 10위권이라 한다.
한편, 이미 OECD와 G20 국가 대열에 들었다. 지난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지금은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평균 수명이 40~50세에서 지금은 80세를 초과했고 급격한 고령화 현상으로 머잖아 100세 시대를 예측하고 있지 않은가.
이 모두가 우리의 경제발전에 따른 풍요로운 삶과 국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난 가난 했던 시절보다 사람들은 푸근한 인간미가 없고 각박해진 것이다.
성폭행, 살인, 사기협잡, 뇌물수 수, 비리, 부정 등 온갖 범죄가 횡행하니 말이다.
옛날 최영 장군은 ‘황금을 돌 같이 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황금은커녕 돌도 돌 같이 보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히 여기며 사람의 도리를 찾아 사는 게 아니라 오로지 돈을 찾아, 재물을 찾아 사는 모 습이 역력하다.
이를 위해 사기도 하고 배신도 하고 살인도 하고 형제 가족 간에 재판도 하고 인신매 매도 서슴지 않는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심리인가?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그렇다고 우리 사회 전체가 다 이런 어두운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수단에 가서 가난한 흑인들을 치료하고 학교를 세워 공부도 시키며 봉사하다가 젊은 나이에 간 이태석 신부도 있다. 또 노 점상을 하면서 평생을 안 쓰고고 생하며 장사해서 모은 100여억 원의 재산을 연세대학에 기부한 김순전 할머니도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우후죽순처럼 입후보해서 말만 번지르르 하게 외치는 사람 들, 먼저 자신의 전 재산을 조건 없이 사회에 내놓아 가며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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