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은 각기 한자로 甲(갑옷 갑), 乙(새 을)로 표기한다. 그리고 갑과 을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글자의 뜻보다는 서열이나 등급을 정할 때, 서로 대비되는 관계로 두루 쓰이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간지(干支)에서 천간(天干)의 십간(十干) 중 맨 앞 서열로 등장한다. 그래서 흔히 서열을 정할 때, 갑을 1순위, 을을 2순위로 시작해서 십간 매 끝계(癸)에 이른다. 또 토지나 건물의 매매계약서를 작성할 때 “매도인 ㅇㅇㅇ를 갑이라 정한다.”, “매수인 ㅇㅇㅇ를 을이라 정한다.”라고 하고 이하 각 조항에는 성명 대신 갑과 을로 표기했다. 또 토론할때 서로의 주장만을 내세워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갑론을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갑과 을은 간지에, 또는 서열 등급을 정할 때나 상대적 관계를 나타낼 때 이외에는 특별히 쓰이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갑과 을의 관계를 갑을 상급으로, 을을 하급으로 차별하여 갑이 을을 억압과 폭력으로 유린하는 관계로 쓰이며 이를 국어사전에도 없는 ‘갑질’이라고 까지 표현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런 갑질 현상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일로 모 유명 제약회사의 대표가 자기 차 운전기사를 까닭 없이 폭언 폭행을 한 사실, 군부대 내에서 상급자가 하급병사를 상습적으로 폭행을 하여 견디다 못해 자살에 이르게 한 사실, 심지어는 학교에서 동급생을 또는 하급생을 폭행하는 사실 등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요즘 드러난 사실로 군에서 최고 높은 대장급 장성의 부인이 공관병을 머슴 부리듯 하며 그것도 모자라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언사로 인격을 모독한 것이다. 이를 그동안 거쳐 간 공관병들의 고발로 입건되어 조사 중에 있음을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이를 계기로 그 부군되는 4성 장군도 본인 자신이 사의까지 표명한 가운데 수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이 군의 공관병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40여 년 전 군 복무 시절에도 있었다. 그 당시는 당번병이라고 했었는데 사병들 사이에는 당번병 차출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군 생활이란 모든 면에 열악해서 조금이라도 잘 먹고 편히 지낼 수 있는 근무지를 선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번병으로 가면 부대장 사택이기에 우선 가정 분위기여서 보초나 훈련 그리고 힘든 사역이 없고 가벼운 집안일 정도인 데다 집밥으로 부대 밥보다 잘 먹을 수 있으니 그보다 더 편하고 좋은 생활이 군 생활 중에 어디 또 있으랴. 그래서인가 지금처럼 사모님의 갑질이라는 말조차 있지도 않았다.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고 우리사회 전반에 거쳐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학력 수준이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인권이 존중되고 보장된 이때 자신이 조금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남을 하대하고 갑질을 행사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총명하고 생각이 뛰어나도 어리석은 체 해야하고, 공이 천하를 덮을만해도 경양하여야 하고, 용맹이 세상에 떨칠지라도 늘 조심해야 하고, 부유한 것이 사해(四海)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겸손하여야 하느니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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