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70여 년 전 초등학교 때 학급 단체로 찍은 단장짜리 누렇게 바랜 흑백 사진을 보며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남학생들은 하나 같이 박박 머리에다 거의 다 검정 솜바지 저고리 차림이었고 몇 안 되는 여학생들의 머리는 단발머리에 흰 저고리, 검정치마 차림이었다. 거기다 신발은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거의 다 검정 고무신이었다.

  이때가 8.15 해방 후, 6.25 전쟁 전 무렵이었다. 이 시절 우리나라의 1인당 년 국민소득이 60~65불 정도로 세계 하위급의 빈곤 국가였다. 나라의 주 산업은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이었다. 그 농업이나마 요즘처럼 수리 안전답이 거의 없고 다만 하늘의 비에 의존하는 천수답이 대부분인데다 낙후된 농업기술과 농기구, 비료의 부족 등으로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없었으니 만년 빈곤을 면치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비참한 일이지만 그 당시 미국이 주는 식량 원조로 밀가루, 우유가루, 옥수수, 사탕, 과자 등이 배급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온 구호 의류를 배급받아 입었다. 그러던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최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세계 10위권이었다가 지금은 침체기에 들어 15위로 내려왔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3천 불 정도로, 70년 전에 비하면 400배가량이나 증가한 것이다. 그래도 단 기간 내에 이렇게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여 세계가 놀란 정도로 경제 발전을 이룩해 왔다. 지난날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지금은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OECD에서 세계 각 나라의 평균수명, 교육수준, 생활수준 등을 기준으로 조사 발표하는 ‘세계 삶의 질’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25위(2014년 기준)이다. 아직은 상위선진국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난날에 비하면 우리의 삶의 질은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크게 향상되었다. 현재 UN이 발표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9세(여자 85세 세계 8위, 남자 79세26위)이며 OECD회원국 중 평균수명 증가율이 최고라 한다. 교육
수준은 OECD회원국 34개국 중에서 일본에 이어 19위이다.

이처럼 경제·생활면에서의 향상·발전만이 아니라 국민의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오랜 전통의 유교적 윤리관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평등 민주의식이 싹트고 개성적이고 성취의식이 강해졌다.

  각 산업체 별로 노조가 결성되고 근로자들의 권익을 주장하며 투쟁도 하고 파업도 한다. 국회에서도 여야 간의 정책 대결로 격돌도 하며 각 사회단체에서도 단체의 권익을 주장하는 시위도 한다.

  그러나 발전과정에서 순풍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역풍도 따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와 사회의 현실에서 무엇이 문제인 줄을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풀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지만, 속 좁은 사람과는 못 산다”고 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명언이 떠오른다.  속 좁은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되며, 타협을 모르니 문제가 생기면 서로 상대방에게만 전가시키며 열심히 비판하다가 돌아서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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