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정(情)이 많은 민족으로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 정을 딱히 어떤 것이라 하고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느끼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정을 ‘사물에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오히려 어렵게 느껴진다.

  정이 없는 사람을 냉정한 사람, 무정한 사람이라 한다. 사람에게는 따듯한 아랫목에서 느끼는 온기처럼 정이 있는 사람에게 호감과 믿음이 생겨 더 가까이 대하고 싶어진다. 반대로 냉정한 사람에게는 경계심이 생기며 친근감이 생기지 않는다. 이래서 정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무선통신처럼 보이지 않게 교류하는 것이다.

  이런 정은 혈육을 나눈 가족으로 부터 생겨서 친척, 이웃, 친구, 학교동창, 직장동료 등으로 번진다. 정은 바로 인연으로 발전하여 혈연, 지연, 학연이 이뤄진다. 이렇게 인연 간에 정이 무르익어지면 행동적으로 나타나서 아낌없는 물질적인 주고받음이 생기게 된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가난의 역사속에서 지난 시절을 살아왔다. 그랬기에 무엇보다도 적은 음식이라도 이웃 간에 나눠 먹고 특히 손님에게 후히 접대하는 문화가 있어 왔다. 여럿이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고 나면 각자 부담하는 법이 없다.

  누군가가 혼자 식대를 계산하는 선심을 쓴다. 가끔 계산대 앞에서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선의의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각자 부담(더치페이 Dutch pay)하는 것을 보고 정이 없는 행동으로 본다.

  어떤 면으로는 우리의 이런 정의 문화가 좋은 면도 있지만 이것이 그 순수성을 잃어 상대편으로부터 잘 보이기 위한 아첨형이거나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청탁형으로 변질이 되는 게 문제다.

  이것이 만연되어 사회 건전 풍토를 해치고 부패와 타락으로 병들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제정되어 드디어 지난 9월 28일 부터 시행되게 되었다.

  공직자들이 직무와 관련 없이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 처분을 받으며 그 이하 금액으로 대가성이 없이 받을 경우에는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또 식사 접대는 3만 원, 선물은 5만 원, 경조사비는 10만 원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이 김영란법의 위반 현장을 몰래 사진을 찍고 여러 증거 자료를 구비하여 고발함으로 써 포상금을 받으려는 ‘란파라치’를 양성하는 학원까지 생겨 성행하고 있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방지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이런 위반 현장을 몰래 뒤를 밟아 탐정 행위를 해서 대박을 노리겠다는 것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 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의 변질된 그릇된 정의 문화를 대 혁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핀란드 출신으로 한국에 와 있는 여성 번역가이며 방송인인 ‘따루 살미넨’씨는 그의 글에서,한국의 정이 무어냐고 내게 물어온다면 스스럼없이 ‘할머니’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산촌을 찾아다니며 만나 뵌 할머니들은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오셨으면서도 남을 먼저 생각해 주고, 만난 지 몇 시간도 안 됐는데 딸처럼 대해 주시며 정성껏 밥상을 차려 주시는, 이 분들이 진정 지혜와 정이 넘치는 분들이라고 했다. 새겨들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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