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정원과 가사문학의고장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사극 장르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여행지 중 하나가 담양의 전통정원이다. 과거 드라마 <다모>의 좌포청 후원으로 화면에 비춰졌던‘소쇄원’ 은 단연 눈에 띄는 장소. 우리 전통정원의 자연친화적이며 소박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들 덕분에 드라마가 종영한 뒤에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을 정도다. 예부터 담양은 사대부들이 아름다운 풍경와 정취를 노래한 누각과 정자가 많은 고장이다. 그중 주변 경관이 뛰어난 유서 깊은 정자를 꼽자면 조선조의 선비 양산보가 세운 ‘소쇄원’이라 할 수 있다. 광주호 부근에 자리하는 소쇄원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원림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전통정원이다. 소쇄원을 가리켜 흔히 별서(別墅) 정원이라고 하는데 이는 거주지에서 떨어진 곳에 별장처럼 따로 지어 올린 정원이기 때문이다.

  양산보는 정암 조광조의 문하생이었다. 그가 과거를 보던 해인 1519년 겨울, 기묘사화로 인해 스승 조광조가 사 약을 받고 죽자 세상사에 회의를 느껴 무등산 아래 ‘소쇄원’을 짓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연구하며 지냈다고 한다.
 
자연과 하나 되는 무릉도원

 
 
  소쇄원은 특히 자연에 기대어 지은 자연친화적 조형미가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주차장에서 대나무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통과하면 작은 계곡에 걸터앉은 듯한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작고 소박한 정자, 경계를 가르거나 위압적이지 않은 담장이 아닌 정겨운 느낌의 낮은 담장 등이 그렇다. 그 아래로 흐르는 실개천이 조화를 이뤄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중국과는 달리 정자나 누각, 다리 등 기본적인 시설 말고는 인공적인 변화나 시설을 극도로 자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적인 환경을 억지로 변화시키기 보다는 순리에 따라 최소한의 시설만으로 풍류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이다.

  우리나의 전통정원에서 보듯, 소쇄원의 조경은 흐르는 물길은 막지 않고 담장 밑으로 그대로 흐르거나 작은 보를 세워 흘러 넘치게 하는 정도이고 안팎을 구분하는 폐쇄적인 담장 따위는 아주 낮게 세우거나 아예 만들지 않는다. 자연환경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원림 안으로 자연을 불러들인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이런 까닭에 소쇄원에는 인공의 아름다움 대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살아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정원이 지니는 아름다움이다.

담양의 또 다른 전통정원

 
 
  소쇄원이 자리 잡은 광주호 일대에는 명옥헌원림과 식영정도 위치한다. 여기에 가사문학관까지 둘러본다면 담양으로 떠난 전통정원 탐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정이 될 것이다. 명옥 헌원림은 소쇄원에서 멀지 않은 후산리 마을 뒤편에 숨겨진 비밀의 정원 같은 장소. 오랫동안 방치돼 오다가 20여 년 전 보수를 거쳐 옛 모습을 되찾았다. 명옥헌원림의 가장 큰 매력은 매년 8월부터 개화를 시작하는 배롱나무꽃이다. 연못 주변에 분홍빛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나무가 배롱나무이다. 일조량이 풍부한 남도에서는 배롱나무의 키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클 뿐만 아니라 가지마다 꽃도 많이 피워 올려 명옥헌원림의 여름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이번에는 광주호를 굽어보고 있는 나지막한 언덕에 올라앉은 식영정으로 가보자.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 김억령을 위해 지은 정각(亭閣). 그러나 조선시대 문인 송강 정철의 행적이 깃든 곳이라 하여 송강정, 환벽당과 함께 정송강유적(鄭松 江遺蹟)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정철은 김성원과 환벽당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 식영정을 비롯한 환벽당, 송강정 등지가 송강 정철의 대표작 <성산별곡> 집필의 장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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