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사는 일이 무기수 같다. 체감온도 35도를 기록하는 폭염에 마스크로 가린 얼굴은 숨쉬기조차 힘겹다.지구를 마구 대한 형벌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생활 규범과 관례가 깨지고 패턴도 달라지면서 사람들은 모든 문화적인 것들 보다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성격도 급해지고 화를 참지 못하는 이기주의로 변해간다.종일 매장에서 사람들을
옹기 항아리에 백합꽃을 한가득 담아 방 안에 놓아두고 그 향기와 모양에 하루를 쉬었다. 초등시절 나의 부모는 흰나리 꽃이라는 백합을 심어 꽃밭을 만들었다. 해마다 칠월이 되면 집 마당 한 켠에 무더기로 피어 하얗게 뿜어내던 유년의 환희는 마음의 고삐로 나를 잡아주고 달랜다. 한 여름밤을 몰아 풍기는 강렬한 향기와 마당에 드리운 꽃의 그림자는 어린 시선에서
감자의 변신은 감칠맛이다. 한때는 보릿고개를 징검다리삼아 넘게 해 주던 주식 같은 음식이기도 했다. 그 연유로 강원도에서는 보리감자라는 말이 있다.식량자족이 해결되면서 잊혀 져 가고 있는 아련한 슬픔들이 깃들어 있어 인스턴트식품들의 봇물에 밀려 묻혀질듯 하지만 아마도 우리 정서 속에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또한 절기 하지를 전후해 수확 한다
개를 키우는 친구가 있다. 품종이 하얀 포메라이안으로 쾌활하며 호기심이 왕성하고 신경질적인 소형견이다. 반려동물이란 말을 쓰게 된지 얼마 안 된 시절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그 의식의 붐이 한창일 무렵, 한번 입양한 반려동물은 가족과 같은 존재이니 일생을 마칠 때까지 사랑으로 책임지라는 홍보가 따뜻하고 좋았다. 털을 탈색하고 염색을 하는 외적인 것을 떠나,
전라도 길이다. 광주에 사는 오랜 친구 딸의 결혼식에 가는 중이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전라도 길은 세 번째다. 일요일인데도 붐비지 않고 앞과 옆은 온통 초록 초록으로 산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예식장은 베이지색 건물로 삼층이 모두 결혼식장으로 신랑 신부 하객들로 붐볐다. 연분홍빛 치마 저고리에 마스크를 쓴 친구는 신부같이 예뻤다. 학창
세상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던 역병에 놀라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번엔 잠잠하던 나의 근육들이 놀라 통증으로 엄습 받고 있다.평상시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갑자기 무리하게 사용하여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뭉쳐진 상태로 신경과 혈관을 압박하면 곧 통증으로 이어지고 육체가 고통스럽게 된다.어느 한 날 긴 시간 예초작업을 한 적 있었다. 아마도 그 원인이리라 생각
‘붓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주부가 어느 하루 그림을 그렸다’는 기사를 보내왔다. 크레파스 작가 원은희 작가 얘기다. 10년 경력이 된 그녀의 그림을 보고 ‘행복하다’는 내용에 지금의 내 모습이 떠올랐나보다. ‘행복’은 인간이 그리는 염원이자 정서를 공유하는 소통창구다. 몇 해 전부터 틈틈이 습작해 올린 그림에 그저 그런 반응이었으나 홀로, 그림이란 새로운
작은 참새가 회사 현관 앞에 쓰러져 있었다. 바로 전 잽싸게 날아와 출입 유리문에 부딪혀 머리가 부서졌다. 투명한 유리벽이 벽 아닌 하늘인 줄 알았다. 공간 바람 속에도 숨은 하얀 벽이 있다는 걸 참새도 모르고 살다가 장미가 흐드러져 꽃피울 때 새는 벽에 부딪혀 죽는다. 일터 현관 앞 오른쪽에는 작은 화단이 있다. 포도나무 한 그루와 그 옆에 장미가 심어졌
매일아침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출근부에 인사를 건네기보다 더 먼저 동쪽으로 향한 네 개의 커튼을 힘껏 올린다.대형 창문으로 시야가 확 펼쳐지면 동시에 이른 햇살이 먼저 사무실 안으로 들이 닥친다. 새파랗게 펼쳐진 잔디밭 사이로 어제 정리하다 두고 온 몇 줌의 땀방울들이 마치 이슬처럼 영롱하게 보이는 듯 하여 한참을 내다보며 어제의 상황들
편의점에 가면서 장바구니에 넣어간 지갑이 사라졌다. 검은 장지갑에는 카드 두 장과 현금 십육 만원이 들어있었다. 혹시 두고 왔나 싶어 집에 가서 확인해도 보이지 않았다. 집안을 발칵 뒤집어도 나오지 않아 분실신고부터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배고 함부로 물건을 사지 않는 나로서는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고, 아끼다가 똥이 된
왼쪽 모퉁이를 돌다가 시멘트로 된 가드레일을 왕창 들이박았다. 창문을 내려 남은 커피물을 밖으로 버리려다가 순간 오른쪽 발에 힘을 주었던 것이다. “쾅!” 소리에 차를 보니 타이어와 하체가 밀려 운전대가 마구 흔들렸다. 한산한 좁은 농로라 다친 건 자동차뿐이었다. 사고 점에서 일터가 바로 앞이라 출근을 했지만 차를 운전함에 방심했던 나를 책망하게 되었다.정
올 봄엔 그럭저럭 비가 제법 몇 차례 내려 주었다. 지난여름 지루 하리 만큼 길었던 여름 장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경악스럽다. 긴 가뭄이 들었던 해를 생각하면 안 온 것 보다는 온 것이 나을 수도 있었겠지만 2차적인 피해를 생각하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할 것 이 마땅하다.그러나 하늘이 하는 일을 우리가 어찌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다만 할 수 있다면 어
조류계 타워펠리스로 불리는 까치집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미루나무, 소나무는 물론, 높고 큰 나무 꼭대기 집을 짓는다. 도심에 사는 새들은 개발로 인하여 녹지공간이 사라지자 아파트 베란다, 실외기, 건물 간판, 철탑, 전봇대 같은 곳에 둥지를 만드는 기발한 사는 법을 익혔다.동네 세차장 뒤 까치집이 해마다 커진다. 까치가 강풍 부는 추운 겨울에 집짓기를 하
물가에서의 비릿한 냄새가 아닌 소독약 냄새가 났지만, 도시 속에서 이런 풍요로운 시냇가를 만난 것이 기뻤다. 몸살을 앓고나서 집에서 나오기를 겨우겨우 한 발짝 떼어 배다리 도서관으로 걸었다. 가까이서 물소리가 나길래 둘러보니 시냇물 흐르는 소리다. 자연스레 징검다리가 놓여있고 물레방아도 돌아간다. 돌 틈에 한 포기 아이리스꽃이 피었고 노니는 물고기도 보았다
노란 개나리들이 얼굴을 단장하고 길가에 도열 해 있는데 이제야 알아챈 내가 더 낯선 아침 안동에 기거하는 아들집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고속도로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수줍은 꽃들은 고개를 든 듯 숙인 듯 어설픈 자세로 우리를 바라보고 서있다. 저 멀리 숨어서 핀 진달래 꽃 몇 송이는 아직 배웅의 준비가 덜 된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성질 급한 자두 꽃이
친구들과 하루 꽃과 바람을 보고 느끼는 여행을 떠났다. 가는 곳에 솔솔 바람이 불면 뜻 모를 환호를 지른다. 모두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어렵게 날을 맞추어 세상과 만나는 기쁨의 환호다.소소하게 다닌 곳이 풍경이 되고 기억이 되어 나부낀다. 새봄에 바라보는 푸른 버들 비추는 봄 결에 머물러 바라보는 추억은 무엇이 되어도 좋다.격정의 시대가 있었다. 격정과
새록새록 봄은 동심을 부르며 온다. 울긋불긋 꽃대궐이 펼쳐지고 버드나무 뿌리에서 물을 밀어 올린다. 가지와 잎으로 뭉게뭉게 연두가 번졌다. 아침 라디오에서 ‘도레미 송’이 울려 퍼진다. 어린시절 따라 들어가 부른다. 뮤지컬 영화 을 보고 또 보고도 지루하지 않던 그토록 영화와 음악에 매료된 때가 있었다. 마리아와 일곱 아이들, 마리아는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그린 얼굴, 동그랗게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가사 내용만 들어도 멜로디가 연상되는 유명한 유행가사이다. 동그라미 속에 보이는 세상의 형상이나 사람의 모습 등은 참으로 여러 형태로 보일 수 있다.아마도 이 노랫말을 쓴 사람은 사람의 얼굴을 떠 올리면서 이 가사를 지었을 것이다. 보고 싶었거나 생각하고 싶었던 얼굴의 형태를 음미하듯
동생이 냉이를 주고 갔다. 나물을 좋아하는 언니가 생각났다며 건넨 검은 비닐에 담긴 냉이 무게가 20킬로는 되어 보인다. 잎보다 뿌리가 엄청 길고 굵은 것이 도라지나 인삼뿌리를 연상하게 한다. 흔히 먹는 참냉이는 재배가 가능하여 쉽게 먹을 수 있고 다른 냉이들은 초봄에 잠깐 만날 수 있다. 진짜 식용인 냉이인가 의심스러워 물으니 황새냉이라고 한다. 황새다리
삼일절 아침부터 밤까지 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렸다.겨울동안 메마른 땅은 하늘에서 오는 생기를 가득 받는다. 봄은 또 희망일까? 봄이란 글자는 어쩔 수 없이 돋아나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끊임없이 지치지도 않고 반복한다.글자라는 언어라는 발음을 되내어 생각하면 묘한 힘이 있다. 비, 봄, 봄풀, 보다, 나무, 동쪽, 서쪽, 하늘, 땅, 띄워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