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뀐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겐 다소 서먹하다.그 이유는 아직 떡국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늘 상 우리설이 되어야 명절이 되었다는 인식이 명백하기 때문이다.며칠 후면 설날이다.드디어 떡국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날 이기도 하다.왜냐하면 자랑스럽게 나이와 더불어 맛있게 음미하며 먹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흔히 우리는
‘물만밥이 목이 메다’의 속담이 있다.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잘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슬픈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새해 초입부터 몸살을 앓았다.아무 것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입맛을 잃고 누워만 있으니 마음이 약해지고 모든 것이 부질없이 여겨졌다. 사계절 중 겨울은 마음이 가장 추운 계절이다.어디 낙엽만이 떠나갔겠는가, 바람 골목에 서 있는 날이면
동해바다 수면위로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새해의 붉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주먹이 불끈 쥐어 지면서 어금니를 살짝 악물어 보게 된다. 긴 한해를 보내고 난 위로와 격려의 포옹처럼 뜨겁기도 하다.격정의 새해를 시작하라는 열정적 응원이라 느끼면서 이글거리는 생동감을 잊지 말자는 자성적 의미도 큰 것이 확실하다. 우리들 가슴속에는
비가 내린 후, 베란다 물청소를 시원하게 끝내고 하늘을 보니 무지개가 떴다. 미세먼지가 매일 체크되는 공기 속에서 그것도 동지가 지난 절기에 선 무지개를 보다니!어학 사전에서 ‘무지개’ 는, “대기 중의 많은 물방울에 햇빛, 달빛의 굴절 반사로 간섭되어 생기는 빛 현상, 흔히 비가 멎은 뒤 해의 반대편에서 나타나는데 보통 바깥쪽부터 빨강, 주황, 노랑, 초
누구나 한번쯤은 추억의 기차 여행을 기억하고 있을 것 이다.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광에 흠뻑 빠져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재잘 거리던 학창시절 여행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잠깐 거슬러 올라가 보니 70년대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여름방학 중 임시 소집일이 있었던 8월 몹시 무더운 날 이었다.평소 가까이 지내던 친구 넷이서 급조된 기차여행의 아찔했던 잊지
일요일 오후 겨울 햇볕이 방에 가득하다. 나의 뇌가 생각하는 대로 내 방은 하루 이틀 모습을 바꾼다. 시간과 함께 골동품처럼 오래된 가구가 놓여 있다. 노란색 옷장은 오래전 동생에게 받은 박달나무장인데 세월과 함께 은은히 누런빛이 난다. 은둔의 모서리에서 누에처럼 무슨 혼자만의 집을 짓는 것이다. 겨울, 잃음과 응축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겨울의 고요함
제주에서 감귤 택배가 도착했다. 거뭇거뭇 무농약 노지감귤이라 탱탱하고 신선하다. 세간살이와 집을 정리하고 제주에서의 삶을 선택한 자유로운 영혼 조카가 보낸 겨울선물이다. 이른 봄 모종장사를 시작해서 김장 배추모종 장사를 마치면 서둘러 제주로 날아가 겨울을 난다.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 곶자왈, 사시사철 푸른 들과 정겨운 마을들을 지나 평화와 치유를
느닷없이 찬바람이 손등을 에이듯 불고 지나가나 싶더니 마치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귓전을 할퀴고 사라지자 수 천 개의 낙엽들이 넓은 신작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서로 경쟁하듯 뒤돌아 볼 여유도 감춘채로 일목요연하게 내닫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누가 일등을 위해 달린 다 기 보다는 일단은 뛰어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달리고 있음이 역력했다. 바람에
당진으로 이사 가신 이모가 전원 집 마당 꽃밭에 핀 국화를 땄다. 보랏빛 작은 국화를 마구 꺾어 한 아름 내 차 안에 넣어주었다. 곧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실내 꽃병에 꽂아 두면 더 오래갈 것이라며 안겨 주셨으니, 진한 향 무더기에 십일월이 가득하게 순간순간 흐른다. 지난 밤 비바람 소리에 나뭇잎이 다 떨어졌다. 봄, 여름, 가을 초록에 빛나던 정원 호두나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비중이 사는 일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기본적인 그것을 누구나 온전히 누리면서 사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아름다운 호숫가옆에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경험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를 사색의 문장으로 담은 책이다. 요즘 낙엽의 비가가 절
종종 바람이 약간 거칠게 스쳐 분다. 얼마 안 있어 입동 절이 다가 오면서 일교차가 격하게 벌어지고 있다. 몇 차례 비가 지나가면 눈 소식도 곧 뒤 따라 올 것이다.그 며칠 사이가 추풍낙엽의 진풍경이 연출될 최적기를 맞을 것 이다. 살짝만 바람이 불어도 수십여 개씩 낙엽이 쏟아진다. 마치 눈이 날리듯 휘 날리기도 하고 노란 은행잎은 온통 바닥을 물감처럼 물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소사벌이 나의 정원 나의 밭이다. 삼남길이라는 작은 이정표를 따라 가을 냄새 가득한 단풍길을 걷기란 모처럼만에 갖는 부유이다. 나는 한가한 산책자가 아니다. 오히려 생활의 고단함과 병에 짓눌린 곳에서 떨어져 나와 숨쉬기를 선택한 나만의 시간인 것을! 생활력을 앞세운 돈 냄새보다 늦가을 나뭇잎 냄새가 나를 끄는 것은 무엇일까. 움직임 없
음계 한 부분을 건너뛰어 겨울 초입에 온 느낌이다. 보일러를 틀지 않은 방안에 전기매트만 키고 일어나니 찬 공기가 훅 끼친다. 썰렁한 아침이다. 몸이 찌뿌둥하니 나이에 걸 맞는 아픈 곳이 생긴다. 왠지 팔도 잠깐씩 쑤시고 느닷없이 두통이오며 다리에 힘이 풀린다. 무엇보다 여름의 나와는 다르다. 급히 보일러 온도를 올려 본다. 팔년을 함께한 반려묘와 이별한지
가을 정취가 가슴속으로 묻어 들면서 어느덧 따뜻함이 연상되는 시절이 왔다.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가 지나고 얼마 안 있어 절기 상강이 다가 온다. 그야말로 찬 서리가 내리는 계절로 접어들 것이다.그러면서 푸르던 나무들은 뿌리를 감추고 벌렸던 가지들을 조금씩 움츠릴 것이다. 수확보다는 저장에 더 신경을 써야하는 때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두둑한 주머니처럼
바람 부는 날이면 어느 시인은 압구정에 간다지만, 나는 헌책방을 찾는다.초등학교 앞 지하에 오래된 헌책방이 있다. 소풍 나온 듯 들어가 바위틈과 나뭇가지에 숨겨진 보물 찾듯이 두리번거리며 뚫어지게 책장을 본다. 간간이 들려오는 7080음악이 반갑게 흐르고 책방 주인의 편안한 미소가 있다. 어디서 이렇게들 왔는지 되는대로 어지럽게 쌓인 책더미들, 그 구석에
밤나무가 많은 장소를 알고 있는 형부와 언니를 따라 나섰다. 모자와 막 입어도 괜찮을 옷과 장갑, 신발과 집게를 갖추고 왔다. 시내에서 30여분 벗어나면 이미 벼 베기를 마치고 탈곡한 빈 볏짚을 하얀 비닐로 감싸 둥글고 큰 마시멜로 같이 만들어 뒹구는 논의 정경과, 추수를 기다리는 노란 알곡이 고개를 가누지 못 해 누운 황금들판을 보며 익어서 고개 숙인 모
시간과 세월은 늘상 흘러가기 마련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인연이 있었던 까닭에 아쉬움을 더한 표현으로 보내기 싫어함이 내포된 말이다.조금 이라도 더 잡아두고 싶은 미련과 얼마라도 더 가까이 볼을 비벼대고 싶은 애잔함도 서려 있다. 또한 한번 지나가면 다시 불러 올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다가올 시간에 대한 불확실한 신뢰에서 비롯된
성환에 자리 잡은 한옥 카페에 있었다. 여기는 집에서 가까운, 주로 평일에 휴무를 내는 날이면 이곳에 온다.새로운 풍경을 만날 때,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지점에서 보거나 듣는 것을 나만의 기쁨으로 여긴다. 미닫이 격자무늬 문을 열어놓고 작은 한옥 방에서 밖을 내다본다. 마당에는 옹기항아리 모음, 잔디밭 둘레에는 배나무 과수원이 둘러싸인 쉼터에 앉아 있노라면
새들도 집으로 가고 나무와 꽃이 잠든 밤이다. 오늘 보았던 가을꽃을 생각해 본다. 맨드라미, 과꽃, 자주달개비, 일일초와 더불어 많은 꽃이 이름처럼 많다. 비가 유난히 자주 내린다. 지겹다 하면서도 오늘 내린 비는 부침개에 술을 권하는 비다. 퇴근을 하면서 빨간딱지 소주를 샀다. 내일은 휴무이기도 하거니와 비의 음률에 닿고 싶었다. 맑은 것과의 조우는 늘
세월이 흘러도 서로가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금불변의 진리이다. 좌측이 있으면 우측이 있고,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다. 그 가운데 있는 우리는 참으로 난해 하고도 복잡 다난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그 중심을 잡기란 마치 곡예사의 능력과도 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격려와 칭찬 뒤에 숨은 시기와 질투처럼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