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복천을 산책하는 일은 늘 평화롭고 유유하다. 하천 정비가 한창인 지금 베어낸 풀이 누렇게 마르는 냄새도 좋다.‘평택시 바람길숲 조성사업’으로 나무의 수종을 늘이면서 심어진 배롱나무가 새 터에 뿌리를 내렸는지 씩씩하다.벚나무가 있는 언덕길은 대나무가 촘촘 그늘을 드리우고 쉼터 의자와 그네에 앉아 천변에 피고 지는 꽃과 새와 오리를 바라보며 작고 소소한 행복
작은 참새가 회사 현관 옆 장미나무 아래 쓰러져 있었다.바로 전 잽싸게 날아와 출입 유리문에 부딪혀 머리가 부서졌다.투명한 유리벽에 비친 구름에 벽 아닌 하늘인 줄 알았다. 공간 바람 속에도 숨은 하얀 벽이 있다는 걸 참새도 모르고 살다가 장미가 흐드러져 꽃피울 때 새는 벽에 부딪혀 죽는다. 일터 현관 오른쪽에는 한 평 남짓한 화단이 있다. 포도나무 한 그
지구 한구석 촘촘한 틈을 찾아 힘껏 향기를 묻는다.눈물이 나도록 매쾌 하거나, 매콤 새콤하면서도 감칠맛이 나거나, 적당히 매워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수 있는 고약하고도 야릇한 향기를 심는다.주렁주렁 달릴 행복나무처럼 정성스레 꾹꾹 눌러서 생각을 심는다.붉게 익어갈 삶의 향기를 점치며 허리를 편다.오늘밤 밭 한 모퉁이가 밤새 들먹일 것을 상상 하면서 뿌리들의
언젠가부터 길가의 가로수가 온통 하얀 이팝나무 꽃으로 수종이 바뀌었다. 고속도로와 국도 도심 하얀 이밥처럼 수북하고 복스러운 마치 나무 밥그릇을 본 듯 탐스러운 흰 꽃송이를 보니 배가 부르다. 꽃이 지고나면 모든 나무는 몸체와 가지가 검어지고 연한 잎에서 짙은 초록빛으로 변해간다.가지는 잎에 가려져 잎이 나무의 사상을 이끄는 듯 장엄한 시간이 된다.한 꽃이
옹기화분에 제라늄이 피었다. 족두리 모양의 진분홍빛이 피어 몇 날 며칠을 지지도 않고 피고 있다. 베란다와 집안이 환하니 이 공간과 시간에 보는 것으로 멈출 수 있어 기쁘다. 동백으로부터 피어 봄을 일깨워주면 꽃차례로 일어나는 빛의 조응들, 내 마음에도 꽃 이름에 맞게 모란이 피고 작약이 핀다.피고 지는 꽃 이야기, 나의 꽃으로 이틀 밤낮을 써도 이야기꽃은
매일아침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출근부에 인사를 건네기보다 더 먼저 동쪽으로 향한 네 개의 커튼을 힘껏 올린다.대형 창문으로 시야가 확 펼쳐지면 동시에 이른 햇살이 먼저 사무실 안으로 들이 닥친다. 새파랗게 펼쳐진 잔디밭 사이로 어제 정리하다 두고 온 몇 줌의 땀방울들이 마치 이슬처럼 영롱하게 보이는 듯 하여 한참을 내다보며 어제의 상황들을
들길을 지난다. 연푸른 잎들이 돋아 검은 가지를 덮고 있다.나즈막이 핀 노란 민들레와 냉이꽃 애기똥풀이 하늘거리고 희고 붉은 영산홍과 라일락꽃 풍성하다. 시골길은 마음의 고향이라고 했다.높고 낮음 구분 없이 조용히 제 몫의 빛을 발하는 꽃 이야기 듣는 이 밤 향기롭다.칠흑 같은 밤이다. 겨우내 헐벗은 까치집 울타리 푸르게 단장한 낙엽송을 지나서 물을 댄 논
새록새록 봄은 동심을 부르며 온다. 울긋불긋 꽃대궐이 펼쳐지고 버드나무 뿌리에서 물을 밀어 올린다. 그리고 봄비가 내렸다. 꽃잎들을 비와 바람에 보내고 가지와 잎으로 뭉게뭉게 연두가 번졌다. 아침 라디오에서 ‘도레미 송’이 들려 퍼진다. 어린 시절 따라 들어가 부른다. 뮤지컬 영화 을 보고 또 보고도 지루하지 않던 그토록 영화와 음악에
긴 겨울 장막이 걷히고 입춘의 문턱을 넘어 선지도 꽤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아침기온이 가끔씩 영하의 기온을 나타낸다.4월이 되면서 양지쪽 개나리들이 고개를 들고 웃기 시작 했다.노란 산수유 꽃이 가장 먼저 얼굴을 내 밀더니 하얀 매실 꽃이 뒤를 이어 미소를 띠기 시작했고, 곧 이어 울긋불긋 온산에 진달래가 만발 할 조짐이다.길가 벚꽃들이 사람들을
一片花飛減却春꽃잎 한 점 떨어져도 봄빛이 줄어들건만두보의 시 “曲江二首”첫 행이다. 사월은 꽃의 시간이다.어디를 가나 각양각색 꽃이 피고 귀여운 새가 노래를 부른다.봄꽃의 시작은 들판과 경작지 주변 어디에나 새끼손톱 반 정도 크기 하늘색 봄까치꽃(큰개불알풀)으로 시작된다.꽃말이 ‘기쁜 소식’이라고 하니 삭막한 들판을 거닐다 보일듯 말듯 피어난 작은 꽃이 보
절간 같이 조용한 나의 집은 윗층에서 들리는 생동생동 뛰는 어린이들 소리와 같이 산다. 한밤이고 새벽이고 쿵쿵쿵 작은발 뛰는 소리, 화장실에서 들려 내려오는 조그마한 말소리도 이제 적응이 되었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5살, 3살은 엄마 양팔에 매달려 나를 보며 방긋 웃는다. “오늘 윗층으로 이사 온 가족입니다아이들이 어려 조금 시끄러울 수 있어 미리 양해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 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1970년 초에 발표된 유명한 동요 과수원 길의 노래 가사가 봄을 재촉하듯 귓가에 아른거린다.이 노래가 한창 불려 질 무렵 갓 중학생이 된 나를 데리고 아버지께서는
손님이 왔다. 백년손님 주인은 사위가 아니라 장가간 아들이다. 자식을 보는 일이 점점 어려운 세상이다.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 차려내는 밥상이 손님맞이 가장 귀한 대접이라 생각했는데 현관문을 들어서며 하는 아들의 말은 언제나 “엄마, 김치볶음밥 해주세요”이다.이것저것 준비한 음식을 뒤로하고 묵은지 송송 썰어 파기름 낸 달궈진 프라이팬에 찬밥과 들기름을 부어
안과 대기실은 마치 붐비는 터미널 대합실 같았다. 앉은 사람들은 의사에게 내 눈의 불편을 호소하는 짧은 만남을 위해 기다리고 기다린다. 기다림이 지루해 옆 건물 다이소에 가서 빨래집게와 꽃무늬가 든 작은 그릇을 사고 다시 왔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바쁘거나 한가하거나 오직 내 눈에 집중해 모인 사람들 속에 나도 들어간다. 젊은이가 보이지 않아 노인회관에 들
우리명절 설날 아침에 다짐한 새해 각오는 보름명절에 대보름달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더 빌어 보게 된다.그만큼 소원이란 것은 이루어지기를 간곡하게 바란다는 의미 일 것이다.그동안 참으로 많은 소원들을 빌기도 했고 더러는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들도 꽤나 많이 산재해 있지만 우리는 순간순간 잊고 지나다가 또 다른 새해가 되면
푸른 지층이 보고 싶어 통복천을 걷는다. 꿈자리 사나웠던 밤을 캐어내기 위해 넓적 돌다리를 디디며 더러운 물위에 둥둥 뜬 커다란 물고기 주민 사체와 마주한다. 오래 묵을수록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더러움 속에서도 견딘 아가미를 생각하면서 죽어야만 이룩될 숙명을 생각한다. 세상을 아우르는 싱잉singingbowl 소리를 듣고 싶다. 히말라야 티벳 전통 명상
일터에서 내가 하는 일은 치즈를 뜨는 일이다. 토핑 칸에 하얀 리코타 치즈 수천 개를 뜨고 바쁘게 일지를 쓰다 보면 하루가 강물처럼 흐른다. 한 팀에서 일하는 여덟 명의 동료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도우며 팀을 위해 생산에 충실한다.나보다는 남을 생각하고 생산의 효율을 위하여 행동은 전투적이다.쉬는 시간, 추위로 얼었던 몸들이 휴게실로 몰려든다. 마스크 쓴 사
해가 바뀐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겐 다소 서먹하다.그 이유는 아직 떡국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늘 상 우리설이 되어야 명절이 되었다는 인식이 명백하기 때문이다.며칠 후면 설날이다.드디어 떡국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날 이기도 하다.왜냐하면 자랑스럽게 나이와 더불어 맛있게 음미하며 먹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흔히 우리는
‘물만밥이 목이 메다’의 속담이 있다.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잘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슬픈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새해 초입부터 몸살을 앓았다.아무 것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입맛을 잃고 누워만 있으니 마음이 약해지고 모든 것이 부질없이 여겨졌다. 사계절 중 겨울은 마음이 가장 추운 계절이다.어디 낙엽만이 떠나갔겠는가, 바람 골목에 서 있는 날이면
동해바다 수면위로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새해의 붉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주먹이 불끈 쥐어 지면서 어금니를 살짝 악물어 보게 된다. 긴 한해를 보내고 난 위로와 격려의 포옹처럼 뜨겁기도 하다.격정의 새해를 시작하라는 열정적 응원이라 느끼면서 이글거리는 생동감을 잊지 말자는 자성적 의미도 큰 것이 확실하다. 우리들 가슴속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