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달력은 병정처럼 12월을 지키고 있다. 일에 맞는 옷을 입듯이 나는 주방 앞에서 저녁밥을 지을 때 앞치마를 입는다. 초록무늬 앞치마를 걸치면 자세가 있고, 요리하는 마법사가 된다. 그러다 청국장과 떡만두국을 끓여 알뜰하게 식탁에 놓을 줄도 알았다. 김과 파와 마늘을 냉장고에서 꺼내 수도꼭지에 물을 켠다. 요즘 들어 요리고 무엇이고 귀찮을 때가 많
요즘 들어 열띤 응원 소리가 왠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전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게 전해 오고 있지만 금년 카타르 월드컵 응원의 함성은 다소 미약한 듯 아직은 뼛속 깊숙이 파고들지 않고 있다.열기가 달아오르지 않은 접전 초반이라서 일까, 아니면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코로나에 눌려 응원의 함성을 듣지
가로수가 은행나무인 동네다. 미화원이 쓸어 담은 파란봉지에 꾹꾹 눌러 담긴 잎들과 바닥에 뒹구는 잎, 밟혀서 진토(塵土) 되어가는 그 위를 무심하게 걸어간다.아쉽고 쓸쓸한 마음은 내 마음이고 노란 울음의 주인공은 한 시절 마감하고 떠난다.‘인간사에는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라.그러므로 성공에 들뜨거나 역경에 지나치게 의기소침하지 마라’는 소크라테스
오른쪽 뒤통수 중간 쯤에서 통증이 있었다.찌끗찌끗한 증상에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머리에 손이 자꾸 만져지고 안색이 흐리니 동료들이 걱정을 한다. 오후가 되도록 이 지경에 손에서는 진땀이 난다. 작업현장에서 맡은 일이 줄줄이 바쁜데 일을 놓고 현장을 나왔다.운전대를 잡는데 손이 덜덜 떨린다.곧바로 차를 몰아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병원에서는 먼저 코로나 검
거리곳곳에 설치된 정거장은 뭇 사람들의 쉼터이기도 하다.오는 사람과 가려는 사람 모두가 이곳을 이용하여 세상으로 드나들면서도 그 고마움은 잠시 잊고 살고 있는 듯하다.도심 속의 정거장은 많은 사람들이 북적 거리고 이용자가 많고 제 각기 목적지가 다르다.순차적으로 들어오는 버스에 몸을 싣고 제 각기 자리를 비우고 떠나면 또 다른 발걸음들이 다가 왔다가는 사라
이태원 참혹한 참사, 비극의 비보를 접하며 안타깝고 슬픈 마음 금할 길 없다. 코로나로 인한 집합금지가 제한되고 길어지면서 대중적으로 즐길 문화가 부족했던 젊은 MZ세대들이 할로윈데이 축제를 맞아 축제의 본거지 이태원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 엄청나게 몰려들면서 생긴 참변이다.백과에 따르면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 출생하여 2007년 금융위기
서운산 가는 아침 길이다. 어느 한의원 앞 정거장에서 문자를 보며 기다리다가 버스에 올랐다.버스 문 입구에서 카드로 요금을 찍으려는데 카드지갑이 사라지고 없는게 아닌가, 당황스러워 가방 속을 이리저리 뒤적이는데도, 얼마나 허둥거렸으면 이런 내 모습이 참 불쌍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버스 기사님께 카드를 잃어버려 요금을 어찌하오라고 양해를 구하고 두 정거장을
시장기가 서서히 발동하기 시작하는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늘상 식당의 메뉴판을 떠 올리게 된다.어제와는 다른 메뉴를 선택할까 혹은 한 번도 경험 해 보지 않은 색다른 메뉴를 선택할까 등을 마음속으로 정리하며 내심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모두의 선택과 매우 흡사해 지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사람의 입맛은 참으로 각양각색이다.성품과 성격에 의한 식성도 다르거니와 각
한동안 보이지 않던 바퀴벌레가 다시 보이지 시작한다.새벽에 물을 마시려고 불을 켜면 고요한 거실이나 후미진 벽과 문틈 어린 새끼들이 겁 없이 돌아다니다 내손에 죽음을 맞는다.아직도 징그럽고 무서운 것 중 하나가 바퀴벌레다. 서식지가 나무껍질 밑, 돌 밑, 낙엽 밑, 또는 어둑어둑하고 습한 그늘이라 하는데 베란다, 주방, 책장 아래 같은 곳에서 슬슬 기어 나
이야기를 길이라 비유했을까, 내게는 이야기 보따리를 재미있게 풀어 놓아주는 오랜 친구가 있다. 서로 만나면 일상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일들로 이야기꽃을 피운다.가령, 틀 있는 기승전결보다 결론부터 말하고 뜸을 들인다. 듣는 이로 하여 궁금증을 유발하며 재미있게 내용을 풀어내는데 어떤 단편소설 들려주듯 한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이야기의 매력에 행복할 때가 있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이 발자국 소릴 내며 다녀가곤 한다.가을의 중턱인 추분이 지나면서 절기의 변화가 완연해 지고 있다.수확의 계절 가을의 대명사처럼 잘 익은 과일들이 미소를 짓고 있는 광경은 농부의 얼굴을 닮았다.하늘 표정이 맑고 밝다.하늘이 높고 푸르르니 마음속이 청량함을 머금어 새날들이 기쁨으로 이지고 있는 것 같다.시절이 배가 부르고 눈요기가 많아 마음
휴일을 맞아 세 친구가 모였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 간호원이 천직인 친구, 유통관련 일을 하는 나는 어릴 적 죽마고우다.인생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면서 더욱 찾게 되는 친한 벗이다. 오늘은 천안 두정동에 있는 맛 집에서 점심을 먹고 성성호수공원을 산책기로 했다.도심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업성저수지가 수변생태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성성호수공원’으로
전주로 가는 길 아침에는 날이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오른쪽 차장에 앉아 쉼 없이 이어지는 풍경화를 보려 하여 밖으로 자주 시선을 붙였다. 창밖은 산과 들과 집이 짙푸르게 지나가고 해바라기 칸나 꽃들이 피어오르니 오늘 하루의 여행은 설레임이다. 대하소설 ‘혼불’의 최명희문학관은 전주한옥마을 중심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한옥 지붕과 돌담 안에는
세상은 항상 축제 판이다. 봄부터 시작된 축제들이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축제들로 이어지면서 일 년 내내 축제 세상이 전개 중이다. 참 아름다운 세상인가 보다.봄꽃이 피면 산수유 매화 배꽃 복숭아 꽃 진달래 개나리 할미꽃 철쭉 튜울립 장미꽃 등 수 많은 축제들이 지역마다 특색을 살려 아기자기한 단장을 하고 그 기쁨을 우리와 함께 나누며 흥취를 더해 가는가 하
어젯밤에 켜둔 수면 유도 음악을 끄고 보니 날이 살짝 밝았다. 절대 끝까지 못 듣는, 5분 안에 마취시켜주는, 듣자마자 떡실신, 수면 빗소리 등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하다 그래도 말똥거리면 수면유도제를 복용하며 어렵사리 가수면에 든다. 잠들고 싶은데 깊은 숙면을 할 수 없는 갱년기 증상의 하나가 불면증이다. 벌써 몇 년째 잠들지 못하고, 발열로 땀에
바람 부는 날이면 어느 시인은 압구정에 간다지만, 나는 헌책방을 찾는다. 초등학교 앞 지하에 오래된 헌책방이 있다. 소풍 나온 듯 들어가 바위틈과 나뭇가지에 숨겨진 보물 찾듯이 두리번거리며 뚫어지게 책장을 본다. 간간이 들려오는 7080음악이 반갑게 흐르고 책방 주인의 편안한 미소가 있다. 어디서 이렇게들 왔는지 되는대로 어지럽게 쌓인 책더미들, 그 구석에
요즘 지역마다 고장을 상징하는 출렁다리가 많이 건설되어 특유의 풍광을 즐기며 특색 있는 먹거리 볼거리들이 즐비하다.계곡과 계곡을 이어 긴 현수교를 만들어 하늘을 나는 듯 보행할 수 있고 깎아지른 절벽을 가로로 깎아 길을 내 짜릿함을 맛보며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곳들도 상당히 많다. 강줄기를 가로 질러 건설 된 출렁다리가 있는가 하면 바다를 건너 설치된 해
먹실골 일기를 펼친다. 란 제목으로 출간된 오민석 시인의 신간 에세이다.이름도 다정한 먹실골에서 자연물의 보이는 아름다움, 듣는 즐거움, 무엇보다 사람이 주는 행복감을 ‘사유와 감정을 더해 여러 형태의 촉감’으로 은은하게 빚은 보석 같은 글이다.간접적으로 그의 삶을 엿본 기회를 ‘귀한 인연’으로 표현한 친필사인에서 시인의 마
한글 문서의 커서는 작게 반짝인다. 내게 무엇을 쓸 것인지 깜박이며 묻는다.반복과 단조로운 일상에 파묻히지마, 한 존재는 반짝이는 생각의 꼬리 끝을 물고 물어 어떤 무늬로 피어나리라. 해가 떠 오르면 일터로 간다. 출근길에는 라디오가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작은 길과 시골길을 가다 보면 백합이 피고 호박꽃이 환하다.작업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들판 끝에 있다. 여
때 이른 6월의 폭염이 기승이다. 흔히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일러 삼복더위라 한다.찌는 듯 한 갈증과 작렬하는 태양의 맹위는 삼복중에 비로소 그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 올려 삼라만상을 번뇌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복중의 큰형인 말복이 지나면 맹렬한 더위도 물러간다는 희망과 바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지금껏 굳건히 이겨내고 견뎌 온 것 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