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거룩하다 하며, 또 어떤 것을 세속적이라고 구분하는가? 보통 ‘거룩’이란 단어는 종교적 영역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교적인 활동과 관련된 일이나 사람에게는 한자로 ‘거룩할 성’자를 붙인다. 종교적인 일을 전담하는 사람을 ‘성직자’(聖職者)라 부르고,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사람들을 ‘성도’(聖徒)라고 부른다. 종교적 노래를 ‘성가’(聖歌)라
정답을 다 알고 푸는 시험문제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참고서에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을 땐 정답지를 미리 보고 답만 체크하면서 공부하던 때도 있었다. 우리 인생도 이처럼 정답을 모두 알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런데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텐리 하우어워스 교수는 그의 책 에서 기독교인의 삶을 이렇게 정의한다. “기독
지난 주말 큰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사고는 국민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한창 꿈을 펼칠 나이인 젊은이들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유가족들의 애통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누군가에게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었던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같은 시간을 살아왔던, 어찌 보면 건너 건너 알지도 모를 이들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구별’과 ‘차별’, 그리고 ‘다름’과 ‘틀림’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다름을 틀린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것이 아예 틀린 것일 수도 있다. 인터넷에 게시된 다음백과에는 ‘차별’을 “둘 이상의 대상에 특정 기준에 따라 우월을 따져 구별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부연하기를, “종교, 장애, 나이
법은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사회적 약속이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사회가 무질서하다. 시민들에게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법을 무시하고 어길 수 있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때로 번거롭다. 그냥 가로질러 가면 가까운 거리를 횡단보도를 찾아, 그것도 신호를 지켜 건너야 한다. 나 한 사람 편
“차카게 살자”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들 가운데 이런 문구가 종종 등장했다. 맞춤법도 틀린 이 문구를 몸에 새기는 경우도 있었다. 새 인생을 살겠다고 마음먹고 그 의지를 자신의 몸에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데 몸에 그런 문신을 하고 여전히 조폭에 몸담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착함이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몇 주 전 필자가 섬기
옛날 초등학교시절 가을이 되면 ‘가을 운동회’로 학교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운동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경기는 ‘이어달리기’였다. 이어달리기는 “같은 편을 이룬 선수들이 일정한 구간을 나누어 맡아 차례로 배턴을 주고받으면서 달리는 경기”이다. 필자는 이어달리기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고서야 ‘바통’ 혹은 ‘바톤’으로 알고 습관적으로 사용했던 단어의
요즘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 향후 기준금리 발표는 전 세계의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예전보다 큰 폭으로 올려서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강도 높은 통화 긴축정책의 일환이다. 금리 인상 폭이 큰 걸음 즉, ‘빅 스텝’을 넘어서 이제는 거인의 걸음인 ‘자이언트 스텝’이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미국이 짧은
슬픔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옛날 어느 임금이 나이 많은 신하에게 물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가 더 슬펐는가? 자식이 죽었을 때가 더 슬펐는가?” 신하가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어느 쪽이 더 슬펐는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신에게 어느 쪽이 더 슬펐느냐고 차이를 물으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눈앞을 가
어수선한 중에 추석을 맞이하게 되었다.그렇지 않아도 이른 추석인데다, 태풍까지 겹쳐서 이번 주 초반에는 시시각각 들려오는 태풍 속보 방송에 귀 기울이며 보내야 했다.이름도 낯설기만 한 ‘힌남노’라는 태풍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여러 나라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올해 초반만 해도 조금 잠잠해질 것 같았던 코로나가 변이 바이러스로 다시 유행했다.올 8월에는 곳곳
열역학 제2법칙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은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한다고 규정한다. 즉,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이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이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한다는 것이다. 자연 상태로 가만히 놔두면 점점 더 질서가 잡혀지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도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물리적 자연만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고 한다. 자살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울증이다. 가벼운 우울증, 혹은 우울감은 건강한 사람들도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되고 습관화 된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대한 신경정신의학회에서 임상적인 우울증의 특징을
한 살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필자는 중고등학교 시절 족보가 꼬여(?)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교회 중고등부에는 질병 때문이었는지 한해 늦게 학교에 다닌 아이도 있었다. 학년으로는 나보다 2년 아래였지만 실상 동갑내기였다. 형이라 부르며 나에게 깍듯하게 존대했다. 바로 아래 학년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실제 몇 살인지는 알리지 않았다. 형님 대우가 즐거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문을 ‘주기도문’이라 부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이 주기도문을 암송하여 기도한다. 주기도문은 모든 기도의 한 표준을 보여준다. 주기도문의 내용 중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문구가 있다. 일용할 양식은 말 그대로 하루 쓸 양식이다. 이 기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 먼저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으며, 부자였다(눅 19:2).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죄인’이었다.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예수께서 들어가셨을 때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비난했다.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눅 19:7). 마을 주민들은 삭개오의 이름을 들으면 죄인을 떠올렸을 만큼 그는 지역에서 악명 높았다.그는 세리장이었다. 세리는 로마제국의 권력에 빌
기독교인들은 자주 ‘주기도문’으로 기도한다. 주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말하는데, 신자들은 그 기도를 모든 기도의 표준으로 받아들인다(마 6:9-13). 주기도문은 먼저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을 부름으로 시작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이 초월자이심을, 전능한 존재임을 드러내 준다.
지난 주일은 기좌리교회 창립 40주년 기념 주일이었다. 4, 혹은 40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성경에 40은 한 인물이나 민족이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과 시험을 받고 연단을 받아 성장하는 기간으로 자주 등장한다. 모세는 40세의 나이에 이집트 왕궁을 탈출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연단 받았다. 그리고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섬기는 교회가 평택에서 안성으로 변경되었다. 안성시 보개면에 위치한 기좌리교회다.사택은 사정이 있어서 당장 이사를 하지 못하고, 평택의 교회 짐을 먼저 옮겼다. 이사는 여러모로 피곤하다. 정리할 짐이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다.오랜 동안 켜켜이 쌓인 짐들을 몇 주 전부터 나름 정리를 했다.그랬는데도 이삿짐은 5톤 트럭을 넘어 작은 차량을 추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나라와 민족도 사랑해야 한다.신자는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이다.편협한 애국주의나 국수주의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반대로 나라에 무신경한 것도 신앙인으로서 바른 것이 아니다.국가나 민족에 대한 관심 없음이 경건과 신앙의 표준이 아니다.우리 신자들이 이 땅을 살 때 공중에 붕 떠서 사는 것이 아니고 땅을 디디고 살아간다. 바리새인의 제자들
요즘 개구리 우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갑자기 조용해져서 이젠 멈췄다 싶었는데, 한 십분 후에 또다시 떼로 합창을 해댄다.조성되고 있는 석정 근린공원의 초입에 아파트가 있어서 도심지에서도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고맙기도 하다.그러나 개구리 소리가 시끄럽다.베란다 창문이 효자 노릇한다. 베란다 창문을 다 닫으니 어느새 조용하다.아침에 창문